‘신선놀음’3 다망가진 몸 살리기, 김가중 건강秘書
어릴 때 무지 약골이라 10대후반 폐결핵으로 죽다 살아났고 군대 가서 한때 43kg까지 내려가 철원연대병원 3개월을 거쳐 운천 211병원에서 장기요양까지 할 정도로 젊어서 병 치례를 하던 몸이었다.
다행이 군대3년을 버티면서 건강한 몸이 되어 40대까진 그런대로 무탈하게 잘 살았는데 어느 날 부터 뱃구레가 두둑해지더니 숨이 차고 혁대가 자꾸 늘어났다. 버스에서 앉지 않기 계단 뛰어 오르기 등 노력을 하여 몸을 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슴의 근육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배에 왕자가 새겨지게 하거나 마음대로 조절이 가능했다. 나태해져 늘어진 근육이 불과 한 달 운동하면 근육이 탄탄해지고 배에 왕자가 확연히 생기도록 조절이 가능한 몸이었다.
50대 초반쯤일까?
항문에서 피가 계속 나오고 미주알이 자주 빠져 치질검사를 받았는데 치질은 아니었다. 항 외과를 갔는데 대장암은 아닌 것 같단다. 약수동 송도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용종을 두갠가 떼어냈다. 모니터로 보여주며 수술 하는데 내시경과 함께 넣은 올가미로 똑 떼어내는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간단하고 통증도 없고 신기했다. 부정맥이 위험하니 서울대병원으로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 주었다.
당시에 부정맥 지방간 고지혈 간염보균 등 10여 가지의 성인병에 위험군이라고 계속 진단되었으나 건강에 자신 있었기에 무시했다. 더구나 서울대 담당교수는 이런 것 가지고 병원에 오느냐며 핀잔이었다. 당연히 약도 안 먹고(당시엔 병원에서 약을 타야 되는데 오래 기다려야 되었다. 기다리기 싫어 약도 포기) 또 다시 방치하길 10여년, 50대 후반쯤 검진을 받으니 한 가지 더 빨간색 도장이 찍혀 있다.
“혈관성 치매”
정말 무서웠다. 비로소 그런 전조증상이 있었던 것 같다. 물먹다 사례가 잘 들린다. 말이 어눌해지고 혀가 꼬인다.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글쓰기가 어려워진다. 쓰레기통에 던지면 쏙쏙 들어가던 것들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컵을 잘 깨트린다.
의사에게 달려가니 ‘운동부족’ 한마디 외엔 어떤 답도 해주지 않는다. 형제봉 약수터에까지 올라 매일 약수를 길어다 먹는데 운동 부족이라니? 더구나 내가 사진작간데... 의사에게 화를 냈다.
그 의사 내가 말만 하면 무조건 ‘운동부족’ 해버린다. 참 미치겠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냐고? ‘운동부족’
운동을 하면 낳는 거냐고? ‘운동부족’
지금보다 얼마나 더 운동을 해야 하냐고? ‘운동부족’
빌어먹을 안녕히 계쇼! ‘운동부족’
사실 진단에 나온 혈관성치매 외에 내가 그동안 앓은 수많은 병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사람들이 통상 경험하는 한 두 가지 병들을 나는 모조리 다 경험했다.
오십견 엘보 목디스크 허리디스크, 각혈(기관지염), 알레르기 비후염, 안구건조증, 검열반, 백내장, 청력, 치아 부서짐, 신경성 대장염, 헛배차오르기 위염. 팔다리 저리고 마비되어 잠 못 드는 수많은 밤, 코로 숨을 못 쉬고 입으로 숨쉬니 숨소리 거칠어 식사 때마다 아내에게 구박, 밤에 심하게 고는 코골이, 머리가 갑자기 훤하게 빠지는 원형탈모증, 항문(미주알)빠지는 고통, 항문 정강이 등 특정부위 가려움 증, 눈송이처럼 옥은 떡처럼 일어나는 비듬, 검버섯과 쥐젖으로 피부 거칠고 역겨운 악취진동, 구취, 하늘과 땅이 뒤집어 지는 이석증, 소중풍으로 중풍직전까지 감지, 요실금과 전립선 비대증으로 받은 고통은?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는데 필자가 앓은 병들이다. 물론 외에도 더 많다. 이러한 모든 증세들을 극복하고 지난 5년간은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했다. 과연 어떻게 했길래 그토록 다 망가진 몸을 정상의 컨디션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을까? 지난 5년간 검진 때마다 모든 항목이 정상이었다. 물론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활기가 넘쳐 억측같이 일을 해도 힘든 줄 모른다.
‘운동부족’ 이란 주술에 걸려 그 의사가 웬수 같이 느껴져 욕도 많이 퍼 부었다. 그 의사 귀가 많이 간지러웠을 것이다.
그나저나 자나 깨나 ‘운.동.부.족!’ 그 의사 목소리가 쟁쟁울려 노이로제가 걸려 있었다. 거울 앞에 홀랑 벗고 섰는데
뱃대기는 뽈록하고 갈빗대는 앙상하고 팔다리는 가느다랗고 피부는 거뭇거뭇 늘어지고 거칠다. 얼굴에 검버섯이 피어 거무죽죽하고 아구통이 축 늘어져 있다. 눈가가 조글조글 상늙은이가 측은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서글펐다. 갑자기 인생의 말로가 보였다.
“안돼! ‘운.동.부.족!’ ‘운.동.부.족!’ ‘운.동.부.족!’ 정말이야.”
그날부터 곡기를 끊고 운동량을 3배로 늘렸다.
대학로 사무실에서 북악산을 넘어 국민대를 넘어 청수장 집에까지 거의 매일 걸었다. 북악산은 혜화동부터 가파른 계단으로 시작되어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마지막까지 계단으로 끝난다. 웬만한 이들은 이 길을 오르다 돌아버린다. 어느 처녀들 넷이 오르다 한 구비가 끝나면 계단이 나오고 끝나면 또 계단이 나오니 끝내는 악에 받혀 “언니는 이 산이 좋다고 추천을 한 거야. 누구 미치는 꼴 보려고 작정했지?” 세 여자가 한 여자를 마구 족친다. 아는 지인 한분은 이 산 중턱에서 헬기를 부르고 출동한 헬기에게 마구 화를 냈단다. 산을 이렇게 계단으로 다 만들어 놓으면 시민들을 다 죽으라는 것 아니냐며...
티눈고를 사다 바르니 발바닥이 벗겨지다 뼈가 보일지경이다. 그래도 걸었다. 평균 주 3회를 이 산을 넘었다. 힘은 들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1968년 1월21일 김신조를 위시한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한 이후 40 여년간 사람들의 발길을 받아드리지 않은 산은 원시형태를 유지하여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혜화동 서울과학고 뒷산을 돌아 와룡공원을 지나 말바위 쉼터를 지나고 삼청각을 넘어서 북악팔각정에 올라 내려다보는 그 희열은 걷는 고통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몇 배 남는 기쁨과 아름다움이었다. 북한산을 비껴 고양을 가로지르는 한강 저 멀리를 빨갛게 물들이는 석양은 운치의 극치였다.
이렇게 운동을 지독하게 하면서 먹는 것은 하루 두 끼 밥 두 숟갈로 끝냈다. 왼 종일 먹는 양을 다 합쳐 밥 반 공기도 안 되었다. 외에 야채와 건과류로 허기만 달랬다. 6개월쯤 지나자 어느 날 부터 하늘이 노래지더니 내장이 덜덜 떨리며 구토가 일어난다. 걷는 것은 고사하고 손가락 움직일 기운도 없이 무기력해 졌다. 손톱과 발톱이 푸석푸석 부서지고 갈라졌다. 쪼개지기도 한다. 영양실조였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피부가 고와지고 특히 손은 처녀의 손처럼 매끈하게 예뻐졌다. 근육이 살아나더니 철봉에 매달리니 가슴까지 불쑥 올라간다. 턱걸이 스무개가 간단하게 된다. 코로 숨이 쉬어지고 숨도 차지 않아 행동이 기민하고 활기가 넘치고 무엇보다 왼 종일 일에 매달려도 지치질 않는다. 작년(2016년 8월) 경주 보문단지 현대호텔에 묵을 때 보문 호를 쉬지 않고 하루 한 바퀴씩 두 바퀴를 달렸는데 조금도 숨차지 않았고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달린다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검진을 받았더니 의사가 전화를 해 왔다.
모든 것이 다 정상으로 되돌아 왔다고.....
10가지 위험 성인병들이 모두 정상수치가 되어있었다.
키 162cm 53kg 허리 28인치 정도로 체형이 고착되었다.
운동전 온갖 혈관병이 도졌을 때의 몸무게는 62kg 허리32인치였던 몸이었다. 몸무게 10kg, 허리4인치 뺀 것이 놀라운 효과를 가져왔다.
계속
* 동영상은 2017년 12월28일과 12월31일 아침 핸폰으로 촬영했고 최근 몽골여행 중 너무 잘 먹어 약 3kg 불어 55kg정도인데 요지부동이다. 새해엔 다시 52kg으로 내리고 유지를 할 생각이다. 멧돼지 마주쳐 무서워서 1년간 멈추었던 북악산 넘기를 어제부터 새로 시작했다. 음식조절과 북악산 넘기를 병행하면 죽은 시체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니 신선이 된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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