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선생은 평생을 건축일에 종사하셔서 미적 감각이 남다를 분이시다.
최근엔 한국사진방송>문화예술뉴스>전문가테마섹션에 이학영의 시각이란 방을 마련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들을 수시로 연재하고 있다. 그 점이 여러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 한국사진방송 화요아카데미에서 사진강좌를 하시게 된 것이다.
그는 전달 할뿐이지 많이 알아서 강좌를 한 것은 아니라고 겸손해 하신다. 사실 오랫동안 사진을 하고 사진에선 일가를 이룰 정도로 널리 그 역량이 검증되었음에도 아직도 여전히 홍순태 교수님 등을 찾아다니며 동부서주 사진공부에 매진한다. 그의 강좌를 수회에 걸쳐 동영상으로 중계 해 보겠다.
이학영 교수1. 사진의 태동
1. 사진의 태동
사진은 오늘날 영상언어(visual language)로서 깊숙이 우리생활에 파고들어 선택이 아닌 필수 매체가 되어버렸다. 문명발전에 편승하여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 만큼 영역이 넓어지는 대중화 추세 속에서, 사진의 역사가 200년 이내로 일천하지만, 그 발전 속도는 어느 예술분야보다 급속하게 발전되었고, 우리는 사진인구 천만(추산)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최초의 사진 이미지는 1826년 니엡스가 그의 집 창문에서 본 경치를 카메라 옵스쿠라 장비로 약 8시간 촬영하여 발표(감광지에서 음화로 뽑음)된 바 있으나, 구리판위에 도금한 은 표면에 영상을 맺게 한 다게레오 타입(Daguerre Type)이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의해 1839년 8월19일 프랑소아 아라고에 의해 공포된 것이 사진역사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지만, 그 출발점에는 이견(異見)이 많을 뿐 아니라,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널리 퍼지기 시작한 시점을 말해줄 뿐이지, 정확히 그날 탄생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진이 복제에 근거를 둔다면, 다게레오 타입은 복제가 불가능하고, 은 도금으로 빛 반사로 인한 판독에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바야르는 이보다 앞서 완성도가 더 높은 사진을 만들었고, 영국의 탈보트 역시 다게레오타입이 발표될 당시 독자적 사진제작을 하고 있었고, 문헌에 소개 된 바는 1833년에 브라질에서도 이미 사진이 발명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1880년 미국 코닥(Kodak)사에 의하여 젤라틴 유제(Gehlatin Emulsion)1)가 첨가된 롤필름이 생산 되면서 시작되었고, 세계 1, 2차 대전을 통하여 전쟁 다큐멘터리가 속속 발표되고, 통신, 교통과 인화 매체의 발전은 사진의 발전을 가속화 시켰다.
2. 근대사진의 발전
사진 사학자들은 근대사진을 20C 중반(1900~1950)까지로 분류하고, 20C 중반 이후를 현대사진으로 통칭 구분하고 있다. 필자는 사진사를 논하는데 주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어느 시점에 어떤 영향력 있는 작가가 사진계에 기여 하였는가를 사례를 통하여 관찰하고, 극히 국부적인 사진사 원고이지만, 본 사진사 노트를 통하여 사진계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근대사진이 태동 되면서 큰 변혁의 물결인 사진 분리파(Photo-Secession)2)운동과 전위파 예술의 선구역할을 한 아방가르드(Avant-garde)3), 보도적 기능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의 주류를 이룬 매그넘(Magnum)의 출현에 따른 대가들의 활동은 근대사진의 주류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 분리파 운동의 태동
이 운동은 회화적 사진4)에 대한 전통과 관습의 틀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하는 운동이 독일 뮌헨을 중심으로 시작 되었고, 스티글리츠(A. Stieglitz)는 스트레이트 포토(Straight Photography)를 주창하였다. 일찍 다게르(Mande Daguerr)가 사진을 발표할 당시에 신봉 되었던 순수한 기계적 기록성을 되찾기 위하여 인위적 트릭을 배제한 즉물 사진을 주창하였다.
분리파 운동은 20세기 근대사진의 모태가 된 운동이며, 사진분리파 즉 시세션그릅(Photo-Secession Group)이란 그가 당시 조직한 사진클럽의 이름이다.
그는 또 사진사에 남을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분리파 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1903년 그의 대변지『카메라 워크(Camera Work)』5)를 창간하여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키는데 일조했고, 1905년에는 포토 시세션(일명 Little Galleries, 후에 '291'로 알려짐)이라는 화랑을 열었다. 화랑 '291'은 사진 분리파의 발표에 그치지 않고 전위적인 미술가들도 이용 하므로서 '291'은 근대 사진을 태동시킨 산실이자 현대 미술의 모태가 되었다.
사진-0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스티글리츠의 대표작은 “삼등 선실”을 위시하여 “종점”, “5번가의 겨울”등이 있고, “사우드 스트리트 1932”는 강변도로의 건물입구에서 잠자고 있는 실업자들을 촬영한 사진들이 있다.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현장의 기록들은 필연적으로 발전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 으젠느 앗제(Eugene Atget)와 스티글리츠는 금세기 사진가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앞서 프랑스 태생의 으젠느 앗제(Eugene Atget:1856~1927)는 40대 후반에 사진가로 활동하여, 말년에 세인에 알려졌지만(사망1년 전) 사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며, 작품은 대부분 뉴욕 근대미술관에 보존(1968)되어있다. (사진-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