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한국사진방송=이성녕 기자〕지난 1월 22일 대통령은 택시업계의 강한 반발과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안」에 대하여 법률안거부권(veto power) 또는 법률안 재의 요구권이라 함은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이 이를 공포하지 아니하고 국회에 대하여 재의결을 요구하는 권한을 말한다. 국회가 이에 대하여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2/3의 찬성으로 의결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 확정되게 된다(한정적 거부권).
국민의 대표들로 구성된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는 어떤 헌법 원리에 의한 것인지, 그 의미와 행사요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법률안 공포권 및 법률안거부권은 고대 로마의 호민관이 가졌던 절대적 거부권과 이후 유럽에서 국왕만이 법률안공포권을 가진 것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미국헌법에서와 같이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현대적 권력분립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보며, 절대적 거부권이 아닌 한정적 거부권으로 이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전적인 의미에서 권력분립원리라 할 때는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누어 각각 분리된 국가기관이 당해 권리를 배타적으로 담당하여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에서 권력분립원리는 기능적 권력분립이라고도 하여, 국가권력을 한기관이 주로 담당하더라도 다른 기관과 기능일부를 공유하여 권력남용을 견제하게 하는 방식이다.
입법권의 경우만 보아도, 입법권을 모두 입법부에서만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입법권은 원칙적으로 국회에 있지만, 법률안공포권 및 법률안거부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법률안제출권이 미국처럼 의회에 독점되어 있지 않고, 국회 뿐 아니라 정부에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위헌성을 심사하여 그 법률의 효력을 유지시킬 수도 또는 무효로 할 수도 있어서 실질적으로 입법권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이렇게 입법권이라고 해도 국회에서만 입법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나 사법부도 입법과 관련한 권한을 가지게 된다. 이는 입법권도 남용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위 선심성 법안 등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다음에서는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의 헌법상 의의와 사례를 살펴본다.
1. 대통령 법률안거부권의 근거와 요건
1) 법률안거부권의 의의와 근거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대통령의 헌법수호의무 및 기본권 보호 의무에 근거를 둔다. 미국의 경우에도 헌법수호와 대통령제의 방위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연방주의자백서를 보면,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입법을 신중하게 하도록 하며, 부당한 입법으로부터 헌법질서를 유지하고, 공공선에 적대적인 세력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며 나아가 소수자를 보호한다고 되어 있다.
우리 헌법상 대통령은 법률안 공포권을 가지며(헌법 제53조제1항),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때로부터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헌법 제53조제2항). 재의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가 재의에 붙이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 확정된다(헌법 제53조제3항).
2) 법률안거부권의 종류
법률안거부권에는 환부거부와 보류거부가 있고, 일부거부도 있다.
환부거부라 함은 우리 헌법처럼 대통령이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때 법률안이 정부에 이송된 때로부터 일정기한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보류거부(pocketveto)라 함은 대통령이 국회의 폐회로 인하여 지정된 기일 내에 환부가 불가능할 때에는 그 법률안이 자동적으로 폐기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보류거부가 인정될 것인가에 대하여 헌법 제53조제5항에서 대통령이 15일 이내에 공포나 재의의 요구를 하지 아니한 경우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에 보류거부는 인정되지 않는다.
일부거부라 함은 통과된 법률의 일부조문에 대하여만 재의를 요구하는 것인데, 우리 헌법상 이는 금지되어 있다.
3) 법률안거부권의 행사요건
법률안거부권의 행사요건 중에서 사유에 대하여는 헌법이‘대통령이 법률에 이의가 있을때’라고만 정하고 있다. 법률안거부권의 행사대상은 국회에서 통과한 법률안이며, 예산은 법률이 아니어서 거부권행사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국무위원 해임건의나 계엄해제요구에 대해서도 거부권행사를 할 수 없다. 조약에 대한 동의권에 대해서도 거부권행사를 하지 못한다. 또한 재의요구는 법률안 전체에 대해서 하여야 하며, 일부에 대해서 할 수 없다.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하기 위한 사유를 열거하면, ①법안이 위헌인 경우, ②대통령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경우, ③현명하지 않은 공공정책인 경우, ④집행이 불가능한 경우, ⑤비용이 과다하게 드는 경우 등과 같이 다양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거부권이 행사된 법률안재의요구의 이유를 보면, ①헌법위반을 이유로 하거나, ②법률 집행의 어려움을 이유로 든 것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국회에 환부된 법률안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재의결된 경우에도 정부가 그 법률안의 공포를 지연하거나 공포 후 바로 개정안을 제출한 사례가 많았다. 즉, 재의결된 경우에도 처음에 국회에서 의결된 안대로 법률이 계속 시행된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이후에 수정되었다.
2. 법률안거부권의 사례
1) 우리나라의 사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제헌이래. 지금까지 모두 64건이 행사되었다. 초대대통령 때 법률안거부권 행사 건수가 다소 많았지만, 그 이후에는 사례가 많지 않다.
법률안거부권이 집중적으로 행사된 제1공화국이나 제13대 국회의 경우는 여소야대상황 이었으므로 대통령과 국회가 갈등이 많았던 시기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가 법률안제출권도 가지는데, 특이하게 정부제출 법안이 거부권행사의 대상이 된 경우가 20건이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19건은 국회의 대안이나 수정법안 때문이고, 1건은 「금에 관한 임시조치법 폐지 법률안」으로 정부안이 그대로 가결되었지만 대법원의 판례에 의하여 동법의 존치가 필요해져서 다시 재의요구가 된 경우다.
노태우 대통령은 재임 중에 총 7건의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였는데, 이의서에서 밝힌 사유는 대부분 법리문제를 들고 있고, 정치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과 관련된 권력형 비리문제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법 등에 대해 대통령 측에서 거부권 행사를 검토한 바가 있지만 실제로는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았다. 이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안은 국회에서 여야 간에 합의가 된 법률이라는 점에서 여야 모두 반발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법률안거부권 행사가 많지 않은 이유는 정부가 법률안제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입법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이 많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다.
2) 미국의 사례
미국연방헌법 제1조제7항에 규정된 법률안거부권은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입법과정에 참여하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미국헌정사를 보면, 클리블랜드 대통령(1885-6, 1893-7)이 재임 6년간 584회나 거부권을 행사하여 “거부권 대통령”이라는 별명도 있었으나, 과도한 재정지출이 요구되는 법률안을 거부하여 국가재정을 건실하게 했다
는 평가도 받았다. 실제로 그가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이 재의결된 경우는 7건에 불과했다. 뉴딜정책을 실시한 루즈벨트 대통령(1933-1945)은 재임 12년간 635회나 거부권을 행사하였는데, 재의결된 건수는 9건에 불과하였다. 그 외에도 트루먼 대통령이 250건, 아이젠하워도 181건이나 행사하였다. 그러나 그 외에는 한 대통령이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한 건수가 100건을 넘는 경우가 없으며, 최근 들어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37건, 부시대통령 12건, 오바마 대통령도 2건에 그치고 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경우 자신이 선택한 경제부흥 정책추진을 위하여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분석되고, 클린턴 대통령도 주로 공화당이 의회다수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사회복지관련 법률안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추진을 위하여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연방의회가 대통령의 반대당으로 다수가 구성된 경우에 대통령은 추진하는 정책을 위하여 법률안거부권을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법률안거부권은 대통령의 권한이기는 하지만, 절대적 거부권이 아니라 한정적 거부권이다. 국회가 환부된 법률안을 다시 재의결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 확정되게 된다.
따라서 만일 대통령이 여러 가지 이유로 법률안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국회에서 다시 재의결하면 국회의 의사대로 법률이 관철될 수 있다.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보면,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 행사가 국회의 입법권에 대한 간섭으로 간주되어 정쟁을 격화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여소야대현상으로 대통령의 정책과 부합하지 않는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을 막기 위하여 행사되는 사례들도 있었다.
모든 권력은 남용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입법부도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이나 인기에 영합한 법률을 제정하여 입법권이 남용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또는 국민에 대하여 재정적 부담을 과도하게 지우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국민의 기본권보장 강화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법률이 항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침해할 경우도 있다. 모든 헌법기관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가진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이러한 입법권 남용에 대한 견제장치로서 충분히 존재의의가 있다. 만일 입법권을 견제하는 대통령이 법률안거부권 자체를 남용했다고 판단되면 국회에서 거부대상이 된 법률을 재의결하면 되는 일이다.
이번 법률안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는 관련업계의 반발이 크고 논란도 많다.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할 때는 많은 고려사항이 있겠지만, 국회로서는 국가 및 국민전체의 이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판단하여 재의결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자료=국회입법조사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