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 사진가의 여행사진집 <라비 드 파리>
‘파리의 인생’, 그 온도를 찍다
<라비 드 파리>, 마치 영화제목 같다. 김진석 사진가의 여행사진집 이름이다. 김진석은 ‘길 위의 사진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롯이 두 발로 걸으며 사진을 찍는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있다면 나에게 맞는 스타일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몸으로 느끼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건 걷기”라고 말하는 김진석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 투르 드 몽블랑, 히말라야, 프랑스, 규슈 올레, 아프리카, 제주올레길 등을 걸으며 ‘사람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기자로 10여 년간 일했고, 사진을 강의하며 많은 수강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걷고 부다페스트 카르톤 갤러리에서 한 달간 개인전을 열었다. 지은 책으로 <걷다 보면>, <직고 또 찍고>, <소울 키스>, <폴링 인 바르셀로나> 등이 있다.
파리는 낭만의 도시다. 여행을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름 만 들어도 가슴이 설렐 것이다. 필자는 영국에서 4년간 살면서 몇번 파리를 여행한 적이 있다. 짧은 기간 주마간산식 여행이지만 갈 때 마다 늘 새로움을 느낀다. 낮에 보는 파리와 밤에 보는 파리가 다르고, 거리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또 다르다. 몽마르뜨 언덕과 사크레퀘르 성당에 오르면 펄펄 끓는 예술가들의 영혼이 보이고, 상제리제 거리를 걷다 보면 내 몸 안에 갇혀 있던 자유본능이 봇물 터지듯 뛰쳐나온다.
파리는 달팽이 모양이다. 센강의 북쪽을 중심으로 1구부터 20구까지 나선형 모양으로 뻗어나간다. ‘구’는 행정구역으로서의 기능 뿐 아니라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라비 드 파리>는 걷는 사진가 김진석이 달팽이 모양의 파리 20구를 걸으면서 포착한 파리의 밤과 낮, 파리지앵의 삶을 담은 포토에세이다. 유명한 관광지나 건물, 거리를 담는 보통의 사진과는 달리 김진석의 카메라는 그곳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그들 삶까지 오롯이 담았다. ‘라비 드 파리’는 ‘파리의 인생’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국내 최초 파리 구석구석을 담은 ‘파리 區별’ 여행기다. 지금 당장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할 수 없지만, 잠시나마 파리를 둘러보고싶다면 <라비 드 파리>를 보면 좋다. 이 책은 300여 컷의 사진으로 파리 곳곳을 돌아볼 수 있다. 글보다는 이미지를 보는 게 더 좋은 사람에게 딱 맞는 책이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마치 파리의 거리를 산책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여행자들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진짜 파리지앵이 살고 있는 거리 말이다.
작가는 사진 한 컷당 적어도 5초 정도 머무르며 보기를 권한다. 사진 속 인물, 공간, 상황을 보며 파리에서의 삶을 떠올려보라는 것이다. 산책을 하며 느긋이 주위를 둘러보듯 파리의 어느 골목을 걷고 있다 생각하며 책장을 넘겨보자. 에펠탑, 루브르, 오르세 등 누구나 예측하는 뻔한 파리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의 파리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김진석 사진가는 책 서문에서 “파리의 구석구석을 1,000km 쯤 걸었다. 하루 20-30km, 1구부터 20구까지 2바퀴, 두 달이 걸렸다. 그 사이 10만여 컷의 사진을 찍었다. 파리의 골목골목을 걸으며 함께 한 사람들, 건물들, 동물들..., 매일 낯선 길과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호기심과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단지 에펠탑과 개선문을 본다고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작을 본다고 파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리의 무수히 많은 길과 사람들, 거리에 켜켜이 쌓여 있는 시간들, 그것이 파리다”라고 말한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사진가 윌리 호니스(Willy Ronis)는 아마도 파리의 깊이를 가장 잘 아는 사진가일 것이다. 그 역시 파리의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은 길 위에 있다”고 우리에게 넌지시 건넨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파리의 길모퉁이 작은 선술집에서 만나는 낮익은 사람들, 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 몸을 뉘인 걸인들을 따라 그의 심장은 뛴다. 윌리 호니스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사진 <화물선 위의 아이들,1959>을 찍었을 때였다. 만약 내가 십 분의 일초라도 늦게 셔터를 눌렀다면 이 사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셔터를 누르는 찰라에 배의 커다란 조명도 동시에 켜졌다. 나는 이때 거의 심장마비로 쓰러질 뻔 하였다. 만약 이 사진을 실패했다면 나는 참으로 실망스럽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 순간은 정말 특별했고, 지금까지 내가 끊임없이 찾아 헤매던 때가 바로 그 때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사진이란 그런 것이다.(정리/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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