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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석 사진전 ‘자연과 인간’ 갤러리門
12월8일~14일, 충무로 갤러리 문
자연의 아름다움과 제유적 풍경
“불멸의 것은 사진으로 찍히지 않는다. 신은 빛이고 오직 인간만이 사진을 찍는다. 왜냐면 사라져가는 자만이, 또 그 사라짐을 아는 자만이 머무르려 하기 때문이다.”
- 레지스 드브레
시각예술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인간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예찬을 하던 시기가 시대별로 늘 유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떠한 자연적 풍경이 인간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존재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서구에서는 2천 년가량 작위적인 풍경의 틀을 제시했었고 16세기까지 자연적 풍경을 찬미하지 않았다. 풍경은 서구에서 16세기 후반이나 되어서야 발명된 개념이며, 풍경화 또한 18세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근대적 예술의 장르이다. 그 이후로 풍경은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졌는데 레지스 드브레 (Régis Debray)는 <이미지의 삶과 죽음>에서 현대사회에서 기술의 발달로 자연풍경이 사라질 것을 염려한다. 단적으로는 예술로서의 풍경은 끝났고 그것들은 인공적으로 건설 된다고 언급한다. 즉 “규정에 따라서 보호 구역과 녹지 공간으로 설정되고 우리의 주변 생활의 중심에서 떨어져, 사진 찍히고 이론화되고 틀에 맞추어진 채 포스트 모던의 풍경은(유산으로 물려받은 문화)에 조소 섞인 메아리를 던진다.” (레지스 드브레, 『이미지의 삶과 죽음』).
레지스 드브레의 말을 상기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자연과 연관 지어서 생각할 때 우리들의 풍경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전에 고야 (Francisco de Goya)의 그림 <거인 Colossus>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아무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우리나라의 풍경을 떠올려 본 적이 있었다. 전경의 아랫부분에는 놀란 인간들이 혼란스럽게 엉켜있는데 중경의 모습에는 산 너머에 커다란 거인이 서 있는 작품이었다. 지금에 와서 왜 이 작품을 보고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주변의 풍경을 떠올랐는지 유추해보면 고속도로의 전경과 외곽의 풍경(산, 들)을 거대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반면에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한국의 특이한 풍경 중에 하나가 산등성이를 넘어갈 때마다 보이는 커다란 송전탑들이 나열된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런 풍경들이 마치 거인의 모습처럼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성낙석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개인적인 체험 속에 등장하는 송전탑 같은 기계적인 산물은 보이지 않고, 운무(雲霧)로 덮여 있는 거대한 자연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자연의 모습은 태초의 자연미를 그대로 보존한 체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다. 웅장하고 숭고한 자연적 풍경은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없는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에 현실적인 모습처럼 보이지 않기도 한다. 풍경이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사진은 어느 정도 재현 할 수 있지만, 원래 지니고 있는 풍경 그 자체를 똑같이 표현하기는 쉽지가 않다. 이를테면 공기 감, 바람, 빛의 흔적, 빛과 어둠의 경계등은 서서히 변하는 자연의 속성으로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한다. 작가는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풍경의 변화를 사진으로 교감할 수 있다고 믿으며, 마음속 풍경으로서 내면에 자리를 잡는다. 성낙석은 자연풍경을 전 경화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구성하는 나무의 디테일에 집중하다. 나무의 나이테에 집중한 클로즈업은 ‘제유적’인 방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작가는 나이테에서 시작해서 거대한 자연적 풍경으로 확대되는 상상력의 과정을 보여주며, 반면에 전체에서 부분으로 축소되는 일상을 표현했다. 나이테의 모습은 나무의 출발점이 되면서 동시에 거대한 군집을 이룬 자연의 풍경이라는 상반된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나이테를 통해서 자연의 풍경은 묵시론 적으로 파괴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그렇다면 왜? 작가는 자연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표현했을까? 그것은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게 되면 자연의 모습이 바뀌게 된다는 사실을 직설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무를 잘라내고 밑 둥만 남아있는 흔적을 바라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는 어디에 존재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것은 나무가 사물화되기 전 단계의 모습이다. 이것은 인간이 나무를 훼손 시켜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사물로 전락하는 과정을 바라봐야만 하는 불편함이다. 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곤혹스러운 것은 생명이 있는 유기적인 상태에서 생명이 없는 무기적인 대상이 되어버린 사물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을 수 없다는 사실, 인간이 이 사물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이다.
생각을 좀 더 확장 시킨다면 나무를 소재로 해서 책상을 만들었는데 인간이 나무를 건드렸을 때 만약에 아프다는 반응을 한다면 인간은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비유는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면서도 동일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죽어있어야 하는데 눈앞에는 살아 있어서 공포를 느낀다. 반면에 디즈니랜드에 나오는 장면을 바라보면서는 공포를 못 느낀다. 그 이유는 디즈니랜드에 나오는 장면은 늘 상 바라보기 때문에, 관습적인 바라보기를 통해서 감정이 무뎌진 이유 때문이다. 이런 식의 사고는 초 현실에 해당한다. 즉 현실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인지 그렇지 않은 낯설어 지는 것이다. 인간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지구상의 모든 사물을 지배했으며,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절대 불변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과 사물의 관계가 달라진다면 어떨까? 그랑비유(Granville)는 <인생의 소소한 재앙들, 1843>에서 인간과 사물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묘사를 한다, “물이 새는 데도 잠글 수 없는 수도꼭지, 뒤집어진 우산, 완전히 신을 수도 벗을 수도 없는, 발에서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부츠, 바람에 날아가는 서류, 닫힐 생각을 하지 않은 뚜껑”(조르즈 아감덴, 『행간』)등을 통해서 이러한 현상을 우연히 일어난 단순한 사고라는 생각을 넘어서 인간과 사물 간에 형성되어 있는 새로운 관계를 발견한다. 이러한 예는 인간이 사물을 사용가치로 생각하지만 물건이 사용가치에서 독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성낙석의 <자연과 인간> 사진을 살펴본 것을 정리하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해서 환기하게 하며, 동시에 인간의 자연 파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작가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전체와 부분 이미지가 함유한 진실을 끌어올리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인공적 환경과 자연적 환경의 다양성은 차이는 무엇인지, 인지된 풍경과 작가의 마음속에 내면화된 풍경의 차이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자연과 인간> 사진을 보면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의 <외면일기, Journal Extime>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건 그렇지만 그냥.....아름다운 것은 마음을 쓸쓸하게 하거든요.” 아름다운 것이 풍경인지? 사진의 모습인지? 아니면 불합리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의도는 대상의 표면을 건조하게 제시하는 기계적 산물로서의 사진 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현상 너머의 본질적인 것, 인식론적 장애물을 넘어서 자신의 주제에 대한 깊은 몰두를 통해서 세상의 풍경을 새롭게 인지하려고 시도한다.
김석원(평론가/중원대학교 연구교수)
작가노트
현대 사회는 도시가 산업화 하면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런 모습은 모더니즘 시대와는 다르게 다양한 가치관,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고, 찰리채플린(Charles Chaplin)의 영화 모던타임즈(Modern Times)에서 주인공이 사회의 한 부속품처럼 늘 반복적인 일상을 되풀이하면서 수동적인 행동과 습관화된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들은 ‘개별화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로 인간은 하나의 사물이 지닌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고 단지 그 현상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를테면 쾌락과 고통, 가해자와 피해자, 나의 즐거움과 타자의 고통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한편으로 긍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하기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질에서는 인생의 행복과 삶의 기쁨을 열렬히 갈망하고 있다.
어느 날 자연의 풍경을 찾아다니며 보았던 현장은 분명 고고함과 여유로움이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자연은 빛과 어둠의 경계, 운무(雲霧)로 덮인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의 모습 그 자체였으며, 고요하고, 숭고하기까지 했다. 자연은 마음의 고향으로 빨려 들어가는 비상구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자연은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정신적 안식의 모습이었다. 나는 거대한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인간이 개입한다면 어떤 모습을 할까? 어떤 방법을 동원해야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인간이 나무를 벌목한 흔적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완성된 <자연과 인간> 사진은 무엇보다도 직접보고 찍는다는 행위가 내 사진의 중심이 되었고, 현시대의 단편적인 모습을 정리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사진 작업의 모태가 되었다.
2015.12 성락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