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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첫산행, 눈덮힌 관악산을 오르다
올해도 산의 기상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세월 지나가는게 왜 이리도 빠른지, 지난 해 첫산행은 북한산 백운데에 올랐는데 올해에는 관악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덕유산, 태백산, 소백산, 계방산, 능경봉, 무등산 등 설경으로 유명한 산들은 몇 번씩 다녀왔기 때문에 겨울산행의 경우에도 요즘은 먼 거리의 원정산행보다는 가까운 수도권 산들도 자주 찾는 편이다. 사실 서울근교에 있는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등은 산행코스도 좋지만 설경도 괜찮다. 이 중 특히 북한산은 옛날부터 백두산,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과 함께 오악의 하나로 꼽히던 명산이다.
아침 10시에 과천 향교옆에서 만나기로 해서 서둘러 집을 출발했다.
관악산은 집에서도 제일 가까워 자주 오르는 편이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과천역에서 하차했다. 지하철역에서 10분쯤 걸어 약속장소인 향교옆 첫 막걸리집에 도착, 이미 친구들 8명이 모여있다.
눈이 제법 와서 사방은 눈세상인데 날씨는 온화하다. 겨울산행하기에 좋은 날씨다. 내일부터 다시 한파가 온다는데 오늘 산행을 잡은 것이 참 다행이다.
향교를 지나 10시 55분경에 산행 시작, 땅은 얼었지만 초반에는 아이젠을 신을 정도는 아니다. 이곳에서 연주대 정상까지는 3.2 km 거리이다. 정상템포일 경우 약 90분 소요된다. 동네산이다 보니 늘 다니는 곳이지만 구간별 거리나 시간 등을 제대로 정리해놓은 적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일부러 구간별로 특징적인 곳을 사진에 담아본다.
요즘은 참 편리한 세상이다. 카메라 자체가 메모장이나 다름없다. 디지털이다 보니 사진 정보에 촬영시간, 조리개, 셔터속도, ISO, 플래쉬 사용유무 등 촬영정보까지 모두 기록된다. 이정표, 갈림길 등 주요장소 만 촬영해 놓으면 나중에 산행기를 쓰는데 마치 노트를 보는 것 같이 유용하다.
입구에서 10분 쯤 오르면 왼쪽에 돌무덤이 있는 쉼터가 나오고 다시 5분 더 가면 첫 번째 목제데크다리가 나온다. 목제데크 끝에 대피소가 보인다. 입구에서 18분 정도 올라온 셈이다. 대피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아무래도 눈길이라 위험할 것 같아 아이젠을 신는다.
관악산 오르는 등산로는 과천향교, 과천중소기업청 뒤(육봉 길), 사당역, 낙성대역 경유 서울대 신공학관, 서울대정문, 안양유원지 등 들머리가 다양하지만 대부분 외길이거나 이정표가 확실해서 길을 잘못 들 염려는 없다. 이중 특히 과천 향교 들머리는 완전 외길이다.
이제까지 필자가 다녀본 경험으로는 관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산로는 과천 중소기업청 옆길로 문원폭포를 거쳐 육봉으로 올라 팔봉을 넘어 서울대 쪽으로 내려가는 코스이다. 육봉 팔봉 코스는 암릉이라 약간의 릿지경험이 필요하지만 우회로도 있어 경험자와 함께 오르면 큰 어려움은 없다. 여섯 개의 봉우리를 넘는 육봉과 여덟 개의 봉우리가 있는 팔봉 코스는 관악산의 심장이요 백미이다. 단, 겨울에는 위험하므로 비경험자의 경우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 팔봉 중간에는 왕관바위 등 기암괴봉들이 많아 경치도 장관이다. 육봉 인근 암릉에는 ‘바우사랑 암장’ 등 암벽등반연습을 하는 암장도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이곳에서 한달 간 암벽등반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또 사당동에서 관악문과 지도바위, 촛불바위 등을 지나 쇠줄을 타고 관악산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코스도 스릴이 있을 뿐 아니라 경관이 좋은 편이다. 정상을 넘어 우측 암릉으로 제3왕관바위를 거쳐 신공학관으로 내려가는 코스 역시 기암괴석들도 많고 재미있는 코스이다. 사당동에서 관음사 옆 능선으로 올라 파이프능선을 타는 코스도 경관이 수려하고 약간의 암릉을 타야 한다. 가장 짧은 코스는 신공학관에서 조금 오르다 서울대 방향에서 오르는 코스와 만나는 계곡길을 타고 왼쪽 길로 접어들어 제3깔딱고개에서 바로 과천향교 방향으로 내려오는 코스인 것 같다. 이 코스를 택하면 2시간 30분 정도면 관악산을 넘을 수 있다. 가장 긴 코스는 사당역에서 정상을 넘어 삼성산을 거쳐 안양유원지로 내려가거나 관악역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아닐까 싶다.
요즘은 둘레길이 유행이라 관악산도 둘레길이 생겨 오르는 부담없이 가벼운 트레킹 코스를 돌 수도 있다. 정식 둘레길은 아니지만 서울대 신공학관-학바위능선 중간-팔봉 중간-불성사-육봉능선-관악수목원-관양고교로 이어지는 약 5시간 정도의 관악산 허릿길도 훌륭한 둘레길이다. 관악산에 정식 둘레길이 생기기 전 필자와 함께 자주 산행하는 몇 명 산우들이 2010년 1월에 이 길을 개척하면서 처음으로 우리 나름대로 ‘관악산 둘레길’이라 이름붙인 적도 있다. 그런데 2011년에 다른 코스로 관악산 둘레길이 열림에 따라 우리가 개척한 허릿길은 당시 이 길을 안내한 산행대장 닉네임을 따서 우리들끼리 ‘남릉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오고 있다.
과천향교 들머리에서 30분 쯤 거의 평지길을 오르면 깔딱고개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말이 깔딱고개라고는 하지만 수락산 등 다른 산의 깔딱고개에 비하면 매우 완만한 편이다. 별 부담없이 깔딱고개를 올라 20분 정도 더 가면 제1약수터가 나오고 다시 긴 목제데크 다리를 타게 된다. 제1약수터에서 6분 쯤 오르면 제2약수터, 그러나 이 약수터는 수질이 나빠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
제2약수터에서 12분 더 가면 등산로 삼거리에 이른다. 직진하면 연주암으로 가고 우측 계곡 및 능선을 타면 연주샘을 거쳐 관악사지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관악사지까지는 500m거리이다.
늘 직진코스 만 타봐서 이번에는 연주샘 쪽으로 방향을 잡아본다. 15분 이상 능선과 계곡을 몇 번 오르내리니 연주샘이 보인다. 이곳 역시 현재는 사용할 수 없는 약수터이다. 연주샘에서 조금 오르면 바로 관악사지이다.
관악사지에서 우측으로 가면 사당역 방향으로 가는 등산로이고 좌측 계단을 오르면 연주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가파른 계단을 10분 쯤 오르면 연주암 뒤 고갯마루이다. 고갯마루에서 연주대 정상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다시 10분 산허릿길을 오르면 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에서 연주대가 가장 멋지게 보인다. 관악산 정상 옆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는 연주대. 집 가까이에 있어 자주 오르는 관악산이지만 언제 봐도 절경이다. 고갯마루 이정표에는 이곳 전망대를 아예 ‘포토 존’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5분 정도 더 오르면 관악산 정상이다.
12시 49분. 천천히 오르다 보니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거의 두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보통은 90분 정도면 오르는데 겨울등산이라 천천히 오르다 보니 조금 더 걸렸다. 관악산 정상(629m)은 거대한 바위가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이다. 마당바위 중간에 ‘관악산’이라고 한자로 쓰여진 큰 삼각형 모양의 표지석이 앉아 있다. 눈이 온 뒤라 바위가 미끄러워 표지석에 접근하기도 만만치가 않다. 마당바위 꼭대기에 오르려면 옆에 설치된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한다. 표지석까지 조심스럽게 기어올라 사진을 찍는다.
정상에서 뒤돌아보면 기상관측소능선이 장관이다. 정상에서 바로 반대방향으로 넘어가면 사당동 쪽으로 이어지는 암릉이다. 쇠줄을 타고 넘어 바위문인 관악문을 지나면 관악사지에서 오르는 사당동방향 능선을 만난다.
정상에서 우측 좁고 가파른 바위틈을 지나면 연주대로 내려가는 길이다. 양쪽에 철난간이 있는데도 너무 미끄러워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연주암으로 내려가는 길은 두길이 있다. 조금 전 올랐던 전망대 쪽 허릿길로 내려갈 수도 있고 기상관측소 암릉을 타고 제3깔딱고개에서 내려가는 방법이 있다. 기상관측소 암릉을 타는 방법은 경관은 매우 좋으나 꽤 좁은 바위능선이다. 그냥 워킹산행 만 즐기는 일반등산객들의 경우에는 제법 공포감이 느껴지는 코스이다. 어느 쪽으로 내려갈까 망설이다 기상관측소암릉을 타보기로 했다.
말바위를 지나 좁은 바위를 조심스럽게 넘어간다. 로프를 잡고 내려가기도 하고 바위모서리를 안고 돌기도 한다. 바위에 눈이 남아있고 얼어 조금만 방심하여 미끄러지면 끝장이다. 아이젠을 신었는데도 바위여서 미끄럽다. 좌우는 수십수백길 낭떨어지. 마지막 크럭스(가장 어려운 곳)는 가슴 정도 높이의 바위절벽이다. 아래 발디딤은 경사라서 잘못 내려서면 큰일 난다. 반대편에서 오르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 거꾸로 내려갈려니 발이 떨린다. 아래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바위를 잡고 다리를 먼저 내려야 한다. 둥근 바위라 잡을 곳도 마땅치 않다. 암벽등반 초기 만경봉 암릉을 탈 때 생각이 난다. 수백길 낭떨어지를 가로지르는 피아노바위를 숨을 죽이며 줄타기 하듯 건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뭇튼 그렇게 해서 겨우 눈쌓인 바위능선을 넘었다. 말바위 이정표에서 제3깔딱고개까지 10여분 걸렸다.
제3깔딱고개는 서울대 방향에서 연주암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우측은 서울대 또는 신공학관 방향으로 내려가는 코스이고 직진하면 육봉, 팔봉 및 안양유원지방향이다. 서울대쪽 마지막 등산로가 가파라서 깔딱고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서 서울대까지는 4km, 제4야영장은 1.7km, 팔봉능선까지는 2.3km, 안양유원지는 7.3km 거리이다. 고갯마루에는 라면, 음료수 등을 파는 노점상이 즐비하다.
좌측 계단을 타고 연주암으로 내려간다. 연주암 직전에는 효령각이 있다. 효령대군을 모시는 사당인데 효령대군 영정이 모셔져 있다. 연주암은 삼층석탑이 유명하다. 고려 중기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연주암에 내려서자 마자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한다. 연주암에서는 매일 점심식사를 제공한다. 오늘은 점심도시락을 가져오지않아 연주암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연주암에서 30분 정도 머문 후 하산을 시작했다. 10분 쯤 내려오면 산장이 나오고, 다시 3분 쯤 내려오면 연주샘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른다. 연주암에서 이곳 삼거리까지는 550m 거리이다. 이곳에서부터는 오전에 오른 길의 역방향이다. 오후 3시경 과천 향교에 도착, 약 4시간의 등산을 마무리했다.
늘 느끼는 생각이지만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은 등산에 관한 한 정말 복 받은 사람들이다. 직장 업무상 전세계 수십개국을 돌아다녀봤지만 수도권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우리나라처럼 생활등산을 할 수 있는 명산을 가진 나라는 극히 드믈다. 필자의 경우 만 해도 서초구에 살고있다 보니 집에서 차로 30분 이내에 청계산, 관악산, 대모산 등 멋진 산들이 위치하고 있어 가볍게 산행하기에는 정말 좋다. 또 전철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위치한 강북의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도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생활등산의 명산들이다.
산행은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단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겨울산행은 날씨가 추울 뿐 아니라 땅이 얼고 눈이 쌓여 있기 때문에 방한복과 아이젠 등 철저한 안전관리가 필수이다. 초겨울이라면 비교적 간단한 채비로도 산행이 가능하지만 적설량이 많아지는 2월부터는 산행이 쉽지않은 만큼 필요한 장비도 많아진다. 일조시간이 짧은 만큼 산행시간도 줄기 때문에 해발 1,500미터 이상 되는 높은 산일 경우 늦어도 오후 3시 이내에 하산이나 야영을 결정해야 한다.
겨울산행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체온유지이다. 저체온증은 특히 몸이 젖었을 때 나타나기 쉽다. 땀을 흘리고 능선에 오른 후 잠시 쉴 때는 지체없이 우모복 등 보온의류를 꺼내 입어야 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건전지 방전이 빠르므로 헤드랜턴용 여분도 춘비할 필요가 있다. 겨울산행은 준비물이 많은 만큼 빠뜨리지않도록 평소 목록을 작성해 두고 배낭을 꾸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겨울산행은 다녀본 사람은 그 참맛을 안다. 영화 히말라야 등에서 볼 수 있는 만년설산(雪山)의 장관은 아니지만, 낮게는 500미터 내외, 보통 1,000-2,000 미터 정도의 우리나라 유명산에서도 어느 정도는 설산의 멋진 경관을 즐길 수가 있다. 겨울의 막바지 2월을 맞아 산에서 가장 겨울다운 설경을 즐겨보자. (글,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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