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하회마을을 가다
600여 년의 살아있는 문화유산
봄이 되면 이곳저곳 봄풍경 구경하러 다니기에 바쁘다. 주산지, 세량지, 용비지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봄사진 명소의 하나로 꼽히는 경산 반곡지의 아침 풍경을 담으러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안동 하회마을도 찾았다. 하회마을은 몇 년 만이지만 언제 가봐도 정겹고 고향같은 분위기이다. 기와집 대문에 들어서면 양반들의 글 읽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릴 것 같고, 류성룡 선생이 드라마에 나온 모습 그대로 마루에 앉아 우리를 반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와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류운용 선생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제가 자라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나온 해발 327m의 화산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 있다. 수령이 600여 년 된 삼신당 느티나무가 있는 지역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 마을들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와가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하겠다.
하회마을은 2010년 7월 브라질에서 개최된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우리나라의 열 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등재 결의안에서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 ․ 양동'은 주거 건축물과 정자(亭子), 정사(精舍), 서원(書院) 등 전통 건축물들의 조화와 배치 그 배치방법 및 전통적 주거문화가 조선시대의 사회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이 오랜 세월 동안 온전하게 지속되고 있는 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문집, 예술작품과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학술 및 문화적 성과물과 공동체 놀이, 세시풍속 및 전통 관혼상제 등 주민들의 생활과 신앙에 관계된 무형유산이 세대를 이어 전승되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되었다.
하회마을 주차장에서 하차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은 하회장터이다. 안동찜닭, 안동 간고등어정식 등 안동전통음식점 간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띠고 장터 입구에는 물레방아도 보인다. 하회장터를 지나면 매표소와 하회마을관리사무소가 시야에 들어온다. 입장료는 어른 3천원, 어린이와 65세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등은 무료이다.
하회마을은 매표소에서 1.2km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셔틀버스가 무료로 운행되지만 '물도리오솔길'을 따라 걸을 경우 약 15분 정도 걸린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제방벚꽃길을 걸어본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한 날은 4월 9일. 서울은 이미 벚꽃이 많이 떨어졌는데 이곳은 지금이 한창이다. 서울보다 헐씬 남쪽인데도 벚꽃개화시기가 늦다니 의외다. 마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분지 모양으로 되어 있어 계절이 늦게 오는 모양이다. 벚꽃놀이를 즐기는 방문객들의 모습이 화사하고 활기가 넘친다.
벚꽃길 좌측으로는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우측 제방 아래는 낙동강이 흐른다. 강 건너 산꼭대기에는 까마득하게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산 아래에도 아담한 기와집들이 눈에 띈다.
저 산꼭대기가 바로 부용대. 하회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깎아지른 기암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부용대에 갈려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 불과 5분 이내 거리에 승선요금은 3천원이다.
강을 건너면 먼저 옥연정사와 화천서원을 만난다.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1588년에 지은 정사이다.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을 쓴 장소로도 그 의미가 깊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강물이 이곳에 이르러 깊어지는 데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옥과 같아서 정사의 이름도 '옥연(玉淵)'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옥연정사 옆에는 화천서원(花川書院)이 위치하고 있다. 이 서원은 겸암 류운룡 선생의 학덕을 흠모하던 지역 유림들이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정조 10년(1788)에 건립한 건물이다. 1871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강당과 주사만 남기고 철폐됐다. 이를 아쉬워하던 후손들이 1966년부터 기금을 모아 1996년에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화천서원의 문루인 지산루(地山樓)에 올라 밖을 내다보면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화천서원에서 소나무숲길을 250m쯤 올라가면 부용대에 이른다. 부용대에 서면 하회마을 전경이 그림같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이름을 하회(河回)라고 한 것은 낙동강이 'S' 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부용대는 ‘부용을 내려다보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부용은 연꽃을 뜻하며 하회마을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면 하회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한 송이 연꽃처럼 보여 마을의 모양을 ‘연화부수형’이라 한다. 부용대의 허리 부분에는 류운룡과 류성룡 형제의 두 정사를 가로로 연결하는 ‘층길’이 나 있는데, 이 길로 형제가 왕래하며 우애를 다졌다고 한다. 류원지는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어 ‘하회 16경’이라 하였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 ․ 행주형에 해당한다고 하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부용대에서 250m 더 가면 겸암정사라는 한옥도 있다. 류운룡 선생이 1567년에 학문연구와 제자 양성을 위해 지은 정사이다. '謙菴亭'이라는 현판 글씨는 그의 스승인 퇴계 이황이 직접 써준 것이다. 이곳에서는 벼슬길을 멀리 하고 자영ㄴ 속에서 학문에만 전념하고자 햇던 겸암 선생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강 건너 부용대 주변을 돌아보고 다시 배를 타고 마을 중심부로 돌아온다.
벚꽃길 위쪽은 천연기념물 제473호로 지정된 만송정 솔숲. 이 솔숲은 겸암 선생이 젊은 시절에 조성한 것으로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서쪽의 지기(地氣)가 약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심은 숲이라고 한다. 부용대와 낙동강 백사장과 더불어 하회마을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펼쳐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마을을 도는 방법은 하회마을 관광안내도에 그려진 순서대로 1번 입향조기적비에서부터 출발, 하회마을안내판-하동고택-염행당-양오당-화경당-삼신당 신목-양진당-충효당-영모각-작천고택-빈연정사-민속놀이마당 순으로 돌면 코스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필자는 부용대를 먼저 다녀온 터라 만송정 솔숲을 거쳐 안내도의 반대방향으로 돌아봤다.
만송정 솔숲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먼저 초가집 골목이다. 골목이 고즈넉하고 아담하다. 기와집도 좋지만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필자에겐 초가집들 사이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더 정겹고 가슴에 와 닿는다.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길찾기가 만만치않다.
안내도를 보고 먼저 화경당을 찾아간다. 북촌댁이라고도 불리우는 화경당은 1797년에 류시춘이 사랑채, 날개채, 대문채를 짓고, 1862년에 그의 증손자 류도성이 안채, 큰사랑채, 사당을 지었다. 집의 규모가 웅장하고 대갓집의 격식을 완벽하게 갖춰 사대부 가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화경당은 '和'로 어버이를 섬기고, '敬'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뜻이다. 이 집은 2013년 1월 23일에 디딜방앗간에서 화재가 발생, 큰 피해는 보지않았지만 고택 보존 차원에서 현재 내부출입은 제한하고 있다.
하회종가길로 나와 두 번 째 목적지는 삼신당 신목. 좁은 골목길을 한참 걸어들어가면 거대한 고목을 만난다. 수령이 600년이 넘는 이 느티나무는 마을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기를 점지해 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신목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이곳에서 마을의 평안을 비는 동제를 지낸다. 이곳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시작된다.
하회종가길은 하회마을의 중심도로이다. 이 길을 걷노라면 좌우로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늘어서 있어 마치 과거 속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삼신당 신목에서 멀지않은 곳에 풍산류씨 대종택인 양진당이 있고, 바로 앞쪽에 류성룡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도 위치해 있다.
양진당은 풍산에 살던 류종혜공이 하회마을에 들어와 15세기 경에 최초로 지은 집이다. '養眞堂'이라는 현판은 풍산류씨 족보를 최초로 완성한 류영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충효당은 서애 선생의 종택으로 평생을 청백하게 지낸 선생이 삼간초옥에서 별세한 후 그의 문하생과 지역 유림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졸재 류원지를 도와 건립하였다. '충효당'이라는 당호는 선생이 평소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을 강조한 데서 유래하였다. 충효당 옆에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일대기와 유물 등을 전시한 영모각 건물이 인접해 있다. 서애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검소한 생활을 하여 먹을거리조차 넉넉하지못하였으며, 아들들에게 나누어줄 집조차 없을 정도로 청빈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선생은 1607년(선조 40)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1614년 병산서원에 병산서원에 위패가 모셔지고 1627년 2월에 '문충(文忠)'이란 시호를 받았다.
작천고택-양오당 등을 지나 하회남촌길로 들어선다. 하회남촌길은 주로 초가집 골목길이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따라가다보면 좌측으로 다시 기와집 한 채가 보이고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온다. 호기심에서 들어가보니 이곳이 남촌댁이라 불리우는 염행당이다. 류치목(1771-1836)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처음에는 단출하게 지었는데 그의 증손자인 류영우가 1905년에 크게 확장하였다고 한다. 1954년에 불이 나서 안채, 사랑채와 후대에 지은 작은 사랑채가 소실되었으나 그후 복원되었다.
이집에서는 현재 다듬이질 체험, 맷돌 절구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동고택을 찾아간다. 용현현감을 지낸 류교목이 1836년에 지은 집으로, 마을의 동쪽에 있어 河東고택이라고 부른다.
하회마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으로서 자영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인들의 삶 자체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 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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