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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곧고 매디가 있는 대나무같은 시편들
서정춘 시인 복간시집 '竹篇'
그동안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없었던 서정춘 시인의 대표시집 <죽편>이 복간됐다. 서 시인의 주옥같은 시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서정춘 시인은 194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죽편>, <봄,파르티잔>, <귀>, <물방울은 즐겁다> 등이 있고, 제3회 박용래문학상, 제1회 순천문학상, 제6회 최계락문학상, 제5회 유심작품상, 제5회 백자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시 <30년 전-1959년 겨울> 전문
서정춘 시인의 삶은 <30년 전>과 <죽편․1>로 압축된다. 그는 대꽃 피는 마을을 찾아 여기까지 달려온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었다. 1941년 전남 순천에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매산중고 야간부 야간부를 졸업하고 1968년 시인으로 데뷔할 때까지 줄곳 가난과 독학의 세월을 살아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들이었던 빨치산 출신 ‘외팔이 장씨’, 동경제대 출신 조율사 ‘피아노 최씨’, 그리고 신문배달을 하다가 우연히 집어들어 밤새 필사했던 영랑과 소월의 시집들이 그의 문학의 아버지들이었다. 그는 “시가 그렇게 좋은 것인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를 읽으면 현실의 고통이 말끔히 사라졌다”라고 당시를 돌이켰다.
이문재 시인은 시사저널 기사에서 “신경림 시인과 민족작가회의 회원들이 열어주었던 인사동 출판기념회는 기실 두 번째 출판기념회였다. 그가 기획한 출판기념회는 순천에서 열렸다. 그는 막 나온 첫 시집을 들고 고향을 찾았다. 그를 낳고 키워준 고향산천에 인사하고, 고향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오늘까지 시인이게 헤주었던 한마디-시를 쓰기 위하여 시인이 되어야지,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써서는 안된다-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전해준다.
여기서부터,-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
시 <竹篇 ․ 1-여행> 전문
신경림 시인은 시집해설에서 “시에 관한 한 그 같은 지독한 구두쇠를 나는 달리 본 일이 없다. 게을러서였다면 또 모르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으로 시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시단에 나온지 28년 만에 시집 하나가 없다니, 나오기가 무섭게 두 권, 세 권 시집을 쏟아놓은 우리 풍토에서 참 놀라운 일이다. 이 첫 시집에 실린 시도 겨우 35편, 한 해에 한 편을 썼다는 얘기가 된다. (중략). 이 시집을 보면서 기쁜 것은 그가 시를 가지고 인색을 떤 것이 다 까닭이 있었구나 느껴지는 시 편이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아무것을 들춰 보아도 크게 빠지는 작품이 없다. 공자가 <詩經>을 요약해서 한마디로 말한 ‘思無邪’가 그의 시의 특질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은 그의 시가 동양적 사관에 투철하다는 뜻도 되리라”고 평한다.
이경철 문학평론가는 “시의 지엄함을 깨우쳐 준 시집”이라고 평했으며, 김성동 작가는 “시가 글자 그대로 <말씀으로 지은 사원>임을 아는 시인이다. <竹篇>은 숨이 막힌다”고 찬사를 아끼지않는다. <竹篇>은 우리들 삶의 굴곡이요 여정이다. 가수 장사익은 목이 터져라 서정춘 시인의 시 <竹篇 ․ 1-여행>을 곡으로 만들어 노래한다.
여러 새가 울었단다
여러 산을 넘었단다
저승까지 갔다가 돌아왔단다
시 <단풍놀이> 전문
김재홍 문학평론가는 “처절한 삶의 아픔과 어려움을 시의 명제로 선택하여 한 편 한편에 목숨의 총량을 실어 보여주고 있다고”고 평했으며, 김영철 문학평론가는 “시집 <竹篇>은 그의 시처럼 순수하게 살아온 그의 생애의 투명한 족적인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서정시의 전형을 만날 수 있음에 <竹篇>시집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한다.
신경림 시인은 “이 시는 남도의 어느 대꽃 피는 마을을 상상하게 한다. 험난한 세월을 오래 견디면서 꿋꿋하게 살아온 한 늙은이를 상상하게 한다. 반듯한 돌담과 집 뒤로 우거진 대숲을 상상하게 한다”고 대나무가 실마리가 되는 여러 상상 중 하나로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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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앞사귀
두 귀때기
빗소리 얻으러 귀동냥 가고 있다
귓속으로 귓속으로
귀동냥 가고 있다
*
비오는 날은
떠돌이
빗소리를 아느냐
빗소리 따라다닌
슬픈 귀동냥
*
세상은 빗소리로 가득하고
문득 나만 없다
시 <雨中> 전문
신경림 시인은 “이 시도 아름다운 시다. 비오는 날의 이상한 막막함, 허전함, 쓸쓸함을 이렇게 잡아 낸 시가 과연 우리 시에 몇 편이나 될까”라고 반문한다.
2014년 <백자예술상> 수상 당시 심사위원장인 허영자 시인(전 한국시인협회장)은 심사평에서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는 천생의 예술가, 천품의 시인이 더러 있다. 서정춘 시인은 흔치않은 천성의 시인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이 분의 시에서는 실로 예리한 감각, 민감한 감성, 깊은 통찰력, 전광석화 같은 직관력, 따뜻하고 순수한 심안, 그리고 착한 삶을 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평한다. 허영자 시인은 또 “운율이 시의 한 특성이라고 함은 상식이다. 서시인의 시에는 그 만의 가락이 있다. 그 가락이 흥이 되고 내용에 걸맞는 옷이 되어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순수서정에의 지향이 서 시인 시의 주된 정신인 점도 요즈음 시류에서는 매우 드물고 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찬양도 비판도 저항도 은유와 상징이라는 정서의 순화를 거치고 무섭게 가려뽑은 시어로 응축시키는 시인의 전인적 투척이 놀랍다”고 강조한다.
자네가 너무 많은 시간을 여의고 나서 그때 온전한 허심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지나간 시간 위로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서 눈을 뜰 수 없고 온 몸을 안으로
안으로 웅크리며 신음과 고통만을 삭이고 있는 그동안이
자네가 비로소 돌이 되고 있음이네
자네가 돌이 되고 돌 속으로 스며서 벙어리가 된 시간을
한 뭉치 녹여 본다면 자네 마음 속 고요 한 뭉치는
동굴 속의 까마득한 금이 되어 시간의 누런 여물을 되씹고 있음이네
시 <돌의 시간> 전문
이숭원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에서 돌과 물은 신비롭게 결합하여 독특한 심상을 형성하고 정신의 어떤 경지를 상징하고 있다. 이 시집에 담긴 이러한 정신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그 의미와 가치를 음미하는 일이 앞으로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라고 풀이한다.
진순애 문학평론가는 “시집 <竹篇>은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충격적 구도”라고 평한다.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돋보기까지 갖고 싶어진다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돋보기만한 이슬방울이고
이슬방울 속의 살점이고 싶다
나보다 어리디어린 이슬방울에게
나의 살점을 보태 버리고 싶다
보태 버릴수록 차고 달디단 나의 살점이
투명한 돋보기 속의 샘물이고 싶다
나는 샘물이 보일 때까지 돋보기로
이슬방울을 들어올리기도 하고 들어내리기도 하면서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타래박까지 갖고 싶어진다
시 <이슬보기> 전문
돋보기를 통한 이슬방울과의 교감, 이슬방울로의 귀의, 샘물로의 승화 연결 등이 보탤 데도 깎을 데도 없는 극도로 아낀 말을 통해 그려진 시다. 시인은 이슬방울의 맑고 투명한 형상 속에 스스로를 녹여 자신도 이슬방울처럼 맑고 투명해지고 싶어한다. 나의 살점이 이슬방울이 되고 더욱 보태 샘물이 되고 싶어하는 시적 상상력, 얼마나 신선하고 아름다운 심상인가?
신경림 시인은 “돋보기가 타래박으로 바뀌는 대목도 재미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단단한 돌을 끌로 쪼는 시인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은 비단 나 하나만이 아니리라. 그러나 이시의 더 큰 미덕은 절대 순수를 지향하는 그 맑고 깨끗한 시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리디어린 이슬방울에게 나의 살점을 보태 버리고싶다는 생각은 삿됨이 없어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돋보기로 이슬방울을 들어올리기도 하고 들어 내리기도 한다는 감각적 표현도 주의를 요한다. 이 감각적 표현이야말로 그의 시의 활력의 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각적인 표현이 그의 시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는 다른 시를 읽어도 쉽게 알수 있다”고 평한다.
내 오십 사발의 물사발에
날이 갈수록 균열이 심하다
쩍쩍 줄금이 난 데를 불안한 듯
가느다란 실핏줄이 종횡무진 짜고 있다
아직 물 한 방울 새지 않는다
물사발의 균열이 모질게도 아름답다
시 <균열> 전문
시집 <竹篇> 시인의 말에서 서정춘 시인은 “아 나의 농사는 참혹하구나/흑!/흑!”이라고 썼다. 시인은 등단 28년 만에 다 버리고 35편만으로 첫 시집을 낸 당시의 허탈한 심정을 실토한 것이다. 그는 이 시집을 내기까지 똑같은 꿈을 세 번이나 꾸었다고 한다. “텅 빈 헛간에서 쭈굴치고 앉아 무쇠칼을 갈았다. 다 갈고 나면 은장도가 되고 수박 향을 풍기며 은어 새끼가 된 것을 회 쳐 먹곤 했다. 여기서 시인으로서 나의 장인정신이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시집 <봄, 파르티잔>에서는 “不是一番 寒徹骨 한 번 추위가 뼛속까지 스미지않고는/爭得梅花 撲鼻香 어찌 진한 매화의 향기를 얻으리. 당나라 고승 황벽의 시다. 이 시를 칸딘스키가 추상화론을 쓰면서 인용한 것이다. 뼈가 시린 고통으로 구상을 거치지않고 추상화를 그린 것에 대한 충고다. 이 또한 내 시 정신의 화두다”라고 강조한다. (정리/임윤식)
*펴낸 곳 : 도서출판 황금알, 정가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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