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만 사진전 토포하우스 연재2.

입력 2026년01월02일 11시50분 김가중 조회수 237

제23전시실





 

전시 제목: STREET OF BROKEN HEART (2008-2017)

전시 부제: CAN YOU HEAR THE WIND BLOW

전시 일정: 202613() - 202621()

문의 : 오현금 010 3115 7551

 

작가 노트

집에서 작업실로 가는 도중에 나는 인적이 드문 길을 택한다. 아마도 먼지와 매캐한 냄새 때문일 것이다. 2004년 어느 겨울 늦은 아침, 거의 부러진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고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게 무슨 말하려고 한 거야? 무슨 말하고 싶어?”

그렇게 우리의 관계가 시작되었다-나무와 나와의.

결국 바람과 하늘의 구름이 나와 나무의 대화에 합류했다. 대화는 나의 손짓으로 변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진지하게 요칭하곤 했다.

네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

나는 4년 동안 내가 사는 이 도시 가운데 어디쯤 이름 모를 이 길에 있는 나무들의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않았다.

아무도 이 이름 모를 거리에 대해 알지 못했다. 몇몇 트럭 운전사, 환경미화원, 길에 늘어선 재활용품 수거 업체 직원들, 그리고, 이제 나를 제외하고는......

프랑스 소설가 JMG 르 클레지오와 동행한 서아프리카 여행에서 막 돌아온 어느 날, 여느날처럼 그 거리로 갔다. 바로 그날 이었다. 내가 나무의 목소리 마침내, 내 간절하고도 절박한 요청에 대해 속삭이듯 한 나무의 응답을 들었다.

그래.”

20084월 바로 그날부터 그 거리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은 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나무들과, 그들의 상처와, 살고자 하는 절박한 열망과 맞닥뜨렸다.

그렇지 않은가?

비 내리는 어느 여름날의 새 한 마리. 폭풍우가 지나간 후 이슬을 머금은 나뭇잎, 가을날의 낙엽. 한겨울 풍경 속 꽁꽁 얼어붙은 나무들. 그 어떤 상황에서건, 손에 카메라를 든 채나는 9년 동안 그 거리를 찾았다.

하루 또 하루가 지나며 내가 그 거리에서 보낸 수백일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방식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깨달았다.

내 관점의 변화와 내 작품의 이런 면모가 2000년 이후 사진계의 변화에 대한 나의 반응을 반영하고 있다. 세계적인 주류 사진가들 예를 들어, 신디 셔먼의 인물사진이나 토머스 루프의 집들, 안드레아 거스키의 사막 길 등과 같은 작업은 사회학적인 접근방법을 도입했다.

나는 이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새로운 깨달음에 대해 검토하고 사진의 현재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대안은 바로 샤머니즘적이고 인도적인 접근방식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리 스스로가 계속 자문하게 되는, 근원적이지만 끝이 없는 질문...... 나 역시 답을 찾느라 생각에 잠겨있다.

 

크리스티앙 꼬졸의 글

9년 동안, 서울 한복판 자신의 작업실로 향하는 1.5킬로미터 남짓한 자그마한 거리에서. 김중만 작가는 수천 여장의 흑백사진을 촬영했다. 작가는 이 이름 모를 거리를 상처 난 거리라고 불렀는데 그 거리에 늘어선 나무가 여러 해에 걸쳐 태풍과 사람들의 개입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볼 수 있어서였다. 나무들이 천여 그루에서 몇백 그루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대부분은 상처가 나 있었다. 이 거리를 단순하지만 슬프게,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공간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어떤 영역으로 재현하면서, 김중만 작가는 각종 쓰레기

, 지독한 먼지 냄새, 오래된 벽돌과 폐허를, 직접 보여주거나 사진으로는 연상시킬 수 없는 단 몇 마디 말로 압축하고 있다.

 

언어에 따라서는 수평적 이미지와 수직적 이미지를 '가로 배치 (풍경 사진과 같은)''세로 배치 (인물사진과 같은)'라고 구분해 부른다. 김중만 작가가 지금까지 '자신의' 거리에서 찍은 사진 대부분은 모두 수직, '세로 배치' 이미지이다. 그의 작업은 균형감, 우아함, 유연함, 뛰어난 기교와 가끔은 조각과 같은 모습으로, 고요하거나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움직임에 생동감을 부여하면서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어떤 이는 상징적인 대상이 간간이 융화되는 여백을 중시하는 동양화의 전통을 상기시킬 수 있고, 어떤 이는 간헐적 선 몇 개로 표시된 일종의 고요함을 경험하며, 그렇게 우리는 사색에로 초대를 받는다. 그 안에서 계절도 제 맡은 역할을 다 해내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여린 가지의 움직임과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리드미컬한 호흡을 따라가도록 한다. 쌓인 눈으로 커다란 두 개의 나뭇가지가 만나기도 하고, 사진이 영원히 간직할 새로운 순간적인 지형으로의 전환도 있다.

 

이 느리고 강박적인 사진 대장정이 매일 일어나는 일에 대한 반웅에서 생겨난 욕구 이외에 다른 뚜렷한 목적이 없이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이 수직사진이라는 형태로 틀을 갖춘다고 할 수 있다. 대상과의 거리 관계가 암시하는 모든 것을 감안할 때, 결국 작품에 표현되어야 할 적정 거리, 즉 관객이 작품에 부여하는 원래 거리는 바로 관객이 느끼는 거리이다. 수직적 시야는 우리의 일상의 경험과도 연계되어 있지 않으며 자신의 삶과 작업을 분리하는 거리를 지나치는 작가의 경험과는 더욱더 연결되지 않는다. 관찰 위치상으로 보면 수평적 '가로 배치'가 맞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 없음이, 세상을 고정된 직사각형 속에 나누어 넣으려는 작가의 본질적인 노력과 어우러져, 의인화되다시피 한 나무들에 우리의 시선이 머무른다.

 

세로 이미지는 연속되고,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우아함과 유연함이라는 첫인상 너머로 고요한 폭력이 항상 상존한다. 눈앞에 장관이 펼쳐지지도 않고, 한결같은 상태도 없으며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그것을 헤아려야만 한다. 균형점을 향해가는 선율의 음처럼 우리도 그들의 존재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여백에서 경계를 넘고 평형상태 자체를 깨뜨림으로써 자신의 초상을 흰색이나 회색 하늘에서 날아와 화면의 프레임을 벗어나거나 복잡한 나뭇가지에 머무는 검은 새와 융합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작가의 능수능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종종 불길한 소식의 징조였던 이 검은 새들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 등장하여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침략자 아류도 아니고 일본 사진작가 마사히나 쿠카제의 역작 까마귀의 고독 The Solitude of Ravens에서 헌정한 그러한 새도 아니다. 이 새들은 막연한 불안감의 표징, 즉 답은 내어주지 않으면서 질문만 던지는, 눈길을 사로잡는 요소이다. 이들은 공간으로 사라질 때에도, 나타나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을 때에도 부담이다. 이새들은 작품의 해석에 영원히 개입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고, 작품에 진지함을 더한다. 이들은 영원한 상징이다. 이사진들은 글을 초월하고 시간을 내어 들취 보고 또 들춰볼 때 들려오는 듯한 음악과 연결되고, 그들에게 필요한 시간을 주고, 샘솟는 음악을 경험한 이의 메아리가 되며, 요오드화은 감광지 위에 고정되어 압도적인 부드러움을 지닌 영원한 형태를 얻기 때문이다.

 

이들 각각의 사진은 겉보기에는 조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 고통과 파괴가 숨어있다. 다소 폭력적이고, 다소 장관을 이루며, 다소 눈에 뛸 정도로, 그러나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사람이 가한 선명한 상처뿐 아니라 잔 나뭇가지의 날카로운 각에도 바람이나 눈의 무게로 인한 움직임이 있다. 이 사진에는 심지어 다큐멘터리 같은 관점을 취할 때에도 무엇을 중명하거나 보여주려는 의도가 없다. 그러나 삼차원 세상에서 존재했던 모습에서 유래된 보기 드문 강인함이 있다. 이런 '사실주의적', 능력이 사진을 다른 형태의 재현 수단과 구별한다. 사진이 주는 설명과 느낌을 융합할 수 있는 사실주의, 즉 작품을 만든 이가 보는 이에게 직접 보여주는 주관적 관점 말이다.

 

편집증적인 작품, 강박, 그리고 유한한 작가가 인생을 바친 작품은 항상 근원적인 집착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작품들은 언제나 작가가 이루어 놓은 바를 초월한다. 강박은 우리를 넘어서고, 주제로 회귀하며,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고백하게 만든다. 김중만 작가의 상처 난 나무들과 비슷한 사진 작업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내가 특히 높이 평가하는 사진작가들 작품 중에서 단 하나의 예를 찾을 수 있었다. 미학적 관점에서 보면 관련이 없어 보이고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보헤미안 글라스 제품에 관한 놀라운 정물 사진을 들 수 있다. 체코 출신 사진가 요제프 수덱은 보헤미안 글라스의 이미지를 마법 같은 터치로 재현하기 위해 빛이 물체를 아름답게 비추는 구도에서 사진을 수백 장씩 찍었다. 내 작업실의 미로 The Labyrinth of My Studio마법의 정원에서 In the Magical Garden와 같은 수덱의 다른 연작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이가 없다. 또한 그가 찍은 수천 장의 부러지거나 번개 맞은 나무 사진이 회자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요제프 수덱이 젊은 시절,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부상으로 오른팔을 절단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덱이 찍은 넘어진 나무 사진을 보면서 그의 상처와, 장애와, 그가 찍은 사진이 동일시되었음을 느꼈다. 그 사진들의 정밀함, 간결함과, 필요성에서도.

 

김중만 작가의 작업실로 가는 작은 거리에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도 역시 상처를 입었다. 검은 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지 않을 때에는 어둡거나 밝은 하늘을 부분적으로 덮어 가린다. 그러나 바람은 살아남은 연약한 나무들의 유연한 나뭇가지를 흔들고, 겨울의 흑독함이 지나고, 눈이 주위를 보호하기도 하고 악화시키기도 하고 난 후, 새싹을 틔워 되살아나게 한다. 이중 너무도 많은 나무가 죽은 것은 비단 최근 9년 동안 만의 일은 아니다.

 

진정한 사진가들은 대부분 물질세계에서 자신의 내면적 집착 대상과, 정신적 우주와, 꿈과 악몽을 발견한다. 이름 없는 작은 거리의 나무들이 한 사진가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수천 장의 사진을 찍도록 이끌었다. 그 사진들은 우리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세계의 재난, 예견되었지만 끊이지 않는 자살, 그리고 자연의 순환을 지켜낼 능력이 없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것이 사진의 존재 자체를 규정한다. 나는 어떤 간극이나 내면의 상처가 위험에 처한 이 나무들의 경우에 해당되는지 알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나무들은 확실히 세상의 상처 난 양심, 아마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좀 더 은밀한 무언가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이 상처 난 거리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상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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