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嘉中 fictiot 浪漫遊戲 ‘야망의 끝자락’

입력 2026년03월24일 14시47분 김가중 조회수 253

Boy,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역사는 인간의 두 가지 의지가 바꾸는 법이다. 타성과 야망이다.

야망은 격동이다. 야망은 타성을 밀어내는 힘이다. 정치든 예술이든 세상에선 야망만이 업적을 이룬다. 하지만 야망은 과정이 항상 문제다.

 

포은 정몽주가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 장군을 암살하려는 것을 영민한 그녀는 재빨리 눈치챘다. 5왕자 방원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묘살이 중이었다. 그녀는 방원이 아니면 장군의 목숨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군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음을 알리고 급히 호출했다. 그녀 역시 야망의 화신으로 새 나라를 만드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뛰어 들었다. 방원과 그녀는 손을 잡고 장군을 왕으로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이방원, 이성계의 5 왕자로 17세에 과거에 급제한 실력파 야망의 화신이다. 아버지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기 위한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보자.” 포은 정몽주에게 하여가를 보냈는데 정몽주의 답은 타성의 정점이다.

이 몸이 죽고죽어 일백번(一百番) 고쳐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야망의 철퇴가 내려져 선죽교가 붉게 물들어 버린다. 피가 피를 부르고 최영 장군이 내 무덤에 풀이 안나리라절규하며 절명하자 고려는 핏속에 묻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그녀와 방원은 장군을 왕으로 추대했고 그녀는 조선 최초의 왕후가 되었다.

그러나 호사다마, 궁궐의 하늘은 맑지 않았다.

그녀의 아들이 태자가 되었을 때, 이미 운명은 기울고 있었다.

방원의 칼은 피를 가르며 형제들을 향했다.

야망은 피를 부르고. 왕후의 아들들은 꽃도 피우기 전에 낙화하고 말았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보지 못한 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그것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슬픔에 잠겨 왕으로서의 법도마저 어기고 도성 한가운데 정동에 그녀를 묻었다. 왕은 매일 그녀를 찾아갔다. 사람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장군은 무너진 억장을 부여잡고 홀연히 북으로 떠나 칩거하고 말았다. 왕의 권세도 부귀영화도 덧없음에 분노보다 더 큰 슬픔이 가슴을 저미듯 아픔만 남았기 때문이다. 70년 풍운의 삶에 그녀를 만난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고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것은 그녀의 속삭임뿐이었다.

장군의 인생은 전 세계 역사를 통털어 가장 극적인 드라마틱 여정이었다. 변방의 비주류의 무명 무사가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은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역사란 운명이 그를 앞세워 연출한 소용돌이에 말려들었을 뿐이다.

 

장군의 사랑과 풍운도 일장춘몽이 되고, 방원은 드디어 왕좌의 게임에서 승리를 쟁취하고 한때 야망의 파트너였던 그녀의 아들들을 몰살한 것도 성에 차지 않아 그녀의 무덤을 파헤쳤다. 명문과 석재들은 청계천의 다리가 되었고, 말과 소와 개 그리고 사람의 발밑에 짓밟히는 운명이 되었다. 그리고 유골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양주(지금의 성북구)의 어느 산자락 한 모퉁이로 옮겨졌다. 호랑이가 누비던 외지고 험한 곳이었다. 왕후에서 후궁으로 강등되었음도 물론이다. 또한 조선 최고의 성군인 세종 역시 강 씨의 사후 핍박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야망은 아이러니다.

 

야망의 화신 방원은 왕이 되자 그 능력이 최고의 경지에 올라 참정치를 유감없이 펼친다. 역대 어느 왕 보다 헌신적으로 백성들의 아픔을 보살피고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주고 등 따습고 배부르게 물산을 장려하고 문화를 꽃피우고 예술을 숭상했다. 새로 세워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어둡고 버려진 구석구석을 정비하여 아들 세종이 역사 이래 최고의 명군이 되도록 기틀을 다져놓고 물러났다. 그의 탁월한 정치 감각은 만인에게 존경받으며 성군이란 칭호와 태종이란 존엄한 묘호를 받았다. 야망은 역사를 이룬다. 하지만 그 과정은 역경의 늪을 헤치는 험난한 여정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흐른 후 그녀는 우암 송시열에 의해 비로소 왕후의 신분을 되찾고 사람들은 그곳을 정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종로구 명륜동(그 작가의 사무실 인근)에 송시열의 사택이 있었고 그 사택의 큰 바위 절벽에 송 선생의 글씨 증주벽립(曾朱壁立)'이 새겨져 유교의 성현인 증자와 주자의 뜻을 계승하고 받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데 문화재인 이 바위가 어느 빌라 아래 짓눌려 숨을 헐떡이고 있다. 신덕왕후의 무덤 돌과 같은 신세로 역사의 아이러니로 남아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곳에 서면, 아직도 바람에 버들잎이 흔들리고 있다고.....

그 사랑을 꽃피운 우물과 버드나무가 있던 곳이 어딘지 아는 이 아무도 없지만 애틋한 사랑의 서정시가 써 내려간 대하드라마의 주인공 신덕왕후는 이곳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그 작가의 집 아래

북한산 4대 폭포 중 하나인 청수폭포는 지금도 굉음을 토하며 바위를 짓 찍고 있다.

일제강점기, 경복궁을 가로막고 조선총독부를 세운 일본인들은 이 일대에 청수장(淸水莊)’이라는 최고급 별장을 지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청수장은 유명한 요정으로 변했고, 계곡의 밤은 한층 요란해졌다. 당시 신식 사대부들은 밤새 가무음곡에 취하는 것을 풍류로 여겼고 예술로 착각했다. 청수장의 고급 기생들이 삼청각으로 옮겨간 뒤에도 계곡에는 돗자리를 둘러멘 여인들이 남정네들을 이끌고 숲속으로 들어가 계류의 물소리와 새소리를 장단 삼아 운우지정을 나누곤 했다. ‘모포부대’ ‘박카스 아줌마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정체 모호한 신풍속이 시작된 곳이다.

 

세월이 흐른 뒤 청수장은 북한산 국립공원 탐방안내소로 탈바꿈하여 등산객들의 쉼터가 되었고, 대한민국 자연보전의 핵심 기관인 국립공원관리공단 본부 또한 이 수려한 계곡에 둥지를 틀었다.

 

이 지역엔 수려한 자연경관 때문인지 이름난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다. 토지를 쓴 박경리,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범 김재규, 대한민국 대표 조폭 김두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은막의 여왕 김지미, 탈렌트 나문희 외 사진작가 화가 시인 영화 등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창작에 매진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정릉골은 서울에선 보기 드문 타운하우스 단지로 계획되었다. 몇 년이 흐른 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미리 궁금하다. 조감도엔 마치 우주선을 닮은 듯 보도듣도 못한 기묘한 주택들이 산자락 구릉지대를 따라 고즈넉한 아름다움으로 북한산을 업고 엎드려있다. 그 작가의 집은 현재 빈집으로 귀신들이 밤마다 굿당을 펼치고 뒷마당 밀림엔 멧돼지들이 떼로 살고 있어 몇 달 전엔 엽사들에게 한꺼번에 네 마리나 척살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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