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의 념이 처음 향한 곳은 광활한 우주가 아니었다.
지구!
그중에서도, 오래전부터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산—황산.
황산의 정상에 도착했을 때, 세상은 거의 소리 없이 숨 쉬고 있었다. 바위들은 수억 년의 시간을 견딘 채 서 있었고, 소나무는 허공을 붙잡듯 기묘하게 비틀려 있었다. 구름은 산 아래가 아니라, 산과 산 사이를 천천히 흐르며 선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운해는 살아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창작하는 그 열정을 즐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기기묘묘한 예술들을 쉬지 않고 창조하고 있었다. 창작 창조 이 행위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우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극한의 재미요 보람이요 과정이었다. 결과에 관계없는 .....
운해를 거슬러 뾰족하게 서 있는 봉우리, 신묘한 운해의 조화에 사라졌다간 보이고 보였다간 사라지는 신비로운 바위 사자봉
그녀는 스스로를 드러내기로 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가장 순수한 형태로.
누드! 온 우주를 통 털어 이 보다 더 순수한 상태가 존재할까? 이 보다 더 성스러운 장면이 가능할까? 그것은 드러냄이라기보다, 오히려 사라짐에 가까웠다.
바람이 그녀를 통과했다.
빛이 그녀를 비추고, 동시에 통과해버렸다.
그녀는 풍경과 분리되지 않았다.
그 순간, 첫 번째 사진이 찍혔다. 천상의 누드, 황산의 정상 그리고 누드!
그곳엔 ‘인식’이 있었다.
황산의 바위와 구름, 그리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존재란 개념. 그 기묘한 조합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지구적 개념 최고의 신묘한 걸작으로 바위 절벽에 새겨진 성인들의 글씨처럼 카메라에 새겨졌다.
념은 다음으로 이동했다.
그녀가 선택한 길은 오래된 영화 속의 궤적이었다. 바람처럼 날아오르던 인물들이 지나간 길—왕대나무 숲 위를 스치듯 날던 장면들. 현실에서는 불가능했지만, 그 영화 와호장룡에선 그 모든 것이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왕대 위, 얇은 하얀 옷들이 서로 부딪히며 낮은 울림을 만들고 있었다. 주윤발 그리고 장쯔위, 이번에는 바람과 더 가까운 형태로.
몸은 가벼웠고, 중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떠 있었다.
대나무 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그녀의 윤곽을 스치며 흩어졌다. 그 장면 또한 기록되었다. 보이지 않는 카메라가 아닌, 세계 자체가 기억하는 방식으로.
왕대 숲의 누드!
그렇게 완성되고 있었다.
시간이 뒤섞인 마을—굉촌.
수백 년의 시간이 고요하게 가라앉은 곳.
물길은 마을을 따라 흐르고, 검은 기와와 흰 벽은 빛을 부드럽게 반사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흔적은 남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그리고 낡은 벽을 두드리는 빗발 그리고 폭우....
굉촌의 누드! 그것은 차라리 다큐를 엮어낸 드라마였다.
오래된 포씨네 사당!
주희의 글씨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었다. 성리학의 성인 주자, 즉 주희는 이 곳 출신이었다. 여기서는 이전과 달랐다. 황산에서는 자연과 하나가 되었고, 대숲에서는 바람이 되었지만, 이곳에서는 ‘시간’과 마주했다.
그녀는 다시 자신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형태.
그러나 그것은 노출이 아니라, 시간 속에 자신을 놓아두는 행위였다.
수백 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장면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사당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빛은 여전히 기울었고, 서서히 그림자를 비껴서 서로 다른 음영을 드리우고 공기는 거의 멈춘 듯했다.
그 순간, 또 하나의 사진이 남겨졌다.
사당의 누드! 그것은 웅장한 역사였다.
황산의 정상에서의 누드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누드 여행은 황산 정상에서의 기상천외한 누드 촬영(말도 안 되는 이 여행은 허구가 아니라 진실이다. 도대체 황산의 정상에서 어떻게 누드 촬영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 여행은 와호장룡의 루트를 따라 주윤발과 장쯔이가 판타지 여행을 가로지르며 누드란 천상의 아름다움을 토해낸다. 600년 된 토속전통 마을 굉촌의 누드, 특히 주자의 사당에서의 누드 촬영 등 도저히 믿기 어려운 기발무쌍한 누드 여행을 진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