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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초원에서는 달랐다.
승자는 사라졌고, 패자도 사라졌다.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바람뿐이었다.“
하늘의 자식이라 불리는 민족들에게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거의 예외 없이 족보가 수상하다.
평범하게 "우리 아버지는 누구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지 않는다.
어느 날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고, 칭기스칸의 조상 알랑고아는 천창(천막의 한 가운데 뚫린 창)에서 들어온 빛의 사내에게 정자를 수정받아 아이를 낳았고 그가 칭기스칸의 조상이다.
알이 떨어지고,
신이 다녀가고,
처녀가 아이를 낳고,
늑대가 나타나고,
사슴이 안내한다.
유전자 검사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라 그런지 상상력이 아주 풍부했다.
흉노도 그렇고,
고구려도 그렇고,
신라도 그렇고
가야도 그렇고
몽골도 그렇고,
아리안족도 그렇고,
타브가치도 그렇고,
심지어 예수의 탄생도 성스러운 잉태를 이야기한다.
모두들 하늘과 친척이라고 주장한다.
그 시대 최고의 스펙은 서울대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하늘이었다.
역사를 뒤적이다 보면 나는 가끔 엉뚱한 망상에 빠진다.
혹시...
정말 혹시 말이다.
'아리' 라는 소리가 아주 먼 옛날 하나의 기억을 품고 떠돌아다닌 것은 아닐까?
물론 학자들이 들으면 커피를 뿜을 이야기일 수도 있다.
다행히 내게는 ‘念’ 이 모든 것을 아우러는 개념이 있다. 념은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칭기스칸의 조상, 할머니 알랑고아는 아리랑 미인이란 뜻이다. 고아는 우리말로 곱다 고와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아리랑.
아리안.
마리아.
훈족의 아틸라(아버지).
고구려 유화부인.
경상도에서 아기를 부르는 '얼라'.
씨앗을 뜻하는 '알'.
한강의 옛 이름 아리수.
심지어 무슬림들의 하나님 이름 알라까지.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김가중식 념이 내린 결론이다.
증명도 안 된다.
책임도 못 진다.
하지만 예술가는 가끔 증명보다 상상이 먼저 달려가는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역사책을 읽다가도 자꾸 이름들의 냄새를 맡는다.
혹시 같은 피 냄새는 아닐까.
혹시 같은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메아리는 아닐까.
이런 망상을 하다 보면,
역사는 연표가 아니라 시(詩)가 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 성스러운 산에서 기원을 하고 있는 우리 몽골 스태프들은 아주 진지했다. 그들에게 샤머니즘은 박물관에 전시된 민속품이 아니었다. 생활이었다.
아침에도 하늘.
저녁에도 하늘.
길을 떠나기 전에도 하늘.
말을 타기 전에도 하늘.
중요한 일을 앞두면 반드시 하늘.
2000년이 지나도 변한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오늘 밤,
영하 수십 도의 몽골의 남산 위에서 치러지고 있는 의식도 너무나 당연한 순서였다.
나는 '누드 촬영을 잘하게 해 주세요.' 라는 마음으로 올라왔지만,
몽골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먼저 탱그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허락 없이 시작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촬영 허가를 관공서에서 받는데,
몽골에서는 하늘에서 받는구나.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풍경이었다.
모델은 옷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고,
사진가는 카메라를 닦고 있고,
조명팀은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데,
몽골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촬영 준비였다.
그날 처음 알았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나였지만,
이 촬영의 최종 연출감독은 하늘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