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델을 선발하는 날이다.
40명이 넘게 지원한 모델들 가운데 단 16명만 뽑아야 한다. 사진공모전 심사는 더러 해봤지만, '단체 누드모델 심사'는 난생처음이다.
…아, 아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예전에 누드 영화 **〈마고〉**를 시작하면서 여주인공을 캐스팅하느라 수많은 여배우들의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엄밀히 말하면 누드 심사였다. 세월이 흘러 그 경험이 이런 곳에서 다시 써먹힐 줄이야.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그동안 세계 곳곳을 떠돌며 기록해 온 '세계 누드 여행기'를 차근차근 정리해 볼 생각이다. 여행기와 사진집은 물론이고 웹툰, OTT 콘텐츠,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해 독자들과 만나고 싶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금도 통 크게 걸고 세계 최고의 누드모델을 선발하는 국제 콘테스트까지 열어볼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 본다. 누군가는 허황된 꿈이라며 웃겠지만, 세상은 가끔 그런 무모한 상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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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첫사랑이 설렌다고 하는데, 내겐 첫 만남의 모델이 더 위험하다.
며칠 전 이메일로 받은 프로필 사진 수십 장 .
늘씬한 키.
코트 자락은 바람을 베고,
눈빛은 사람을 쏘아 죽일 듯했고,
턱선은 몽골 초원을 가르는 칼날 같았다.
사진 몇 장이 사람을 이렇게 흔들 수도 있구나.
물론 경험상 사진은 절대 믿으면 안 된다.
사진은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사기 기술이다.
보정.
조명.
각도.
필터.
화장.
이 다섯 형제가 합심하면 평범한 사람도 여신이 되고,
반대로 여신도 주민등록증 사진이 된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참 단순하다.
'혹시 진짜면?'
이 한마디에 심장이 혼자 마라톤을 시작한다.
처음은 언제나 설렌다.
특히 누드 작업을 위한 첫 만남은 더 그렇다.
눈은 어떨까.
입술은?
목선은?
걸음걸이는?
목소리는?
사진 속 분위기는 진짜일까, 아니면 포토샵의 위대한 승리일까.
이번 모집 조건은 제법 까다로웠다.
키는 160cm 이상.
균형 잡힌 몸매.
그리고 무엇보다 볼륨빵빵 모델일 것.
덕분에 지원자들의 프로필은 하나같이 화려했다.
키는 160에서 180.
나이도 모두 젊고 건강한 성인들.
사진만 보면 몽골 초원에서 미스 유니버스 예선이라도 열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수없이 속아 본 인간이다.
사진으로는 다들 천사다.
실물을 만나면...
가끔 천사가 아니라 옆집 철수 누나가 걸어 들어온다.
그렇다고 실망하느냐?
아니다.
그 순간부터 또 다른 작품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참 이상하다.
외투를 입고 있을 때와,
원피스를 입었을 때,
비키니를 입었을 때,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의 분위기는 전부 다른 사람처럼 변신한다. 아마도 손오공의 손녀뻘 되는가 보다.
예전 젊은 시절엔 큰소리쳤다.
"난 옷 입은 것만 봐도 그 속을 다 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사진가가 아니라 점쟁이였다.
세월이 지나 겨우 인정하게 되었다.
모른다.
정말 모른다.
비키니만 입어도 알 수 없다.
카메라 앞에서 사람이 어떤 표정을 만들고,
어떤 긴장을 하고,
어떤 풍만한 몸을 꺼내 놓을지는
셔터가 눌리는 순간까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누드사진은 벗는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감추고 있던 사람을 하나씩 발견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말자.
모델이 촬영을 시작하며 긴장을 풀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줄 때면,
사진가의 심장도 덩달아 박자를 잃는다.
아무리 태연한 척해도 소용없다.
심장은 셔터보다 훨씬 시끄럽다.
사진가는 예술을 이야기하고,
심장은 심장대로 북을 친다.
둘은 원래 따로 논다.
그래서 촬영은 언제나 전쟁이다.
이성과 본능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전쟁.
예술과 허풍이 손을 맞잡는 공연.
그리고 그 모든 소란 끝에 겨우 사진 한 장이 태어난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과연 몽골의 그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사진보다 아름다웠을까.
아니면 사진이 그들에게 미안해야 했을까.
그 해답은 곧 초원 위에서, 보드카 한 병과 함께 밝혀질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