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진시황에게서 천하를 가로채고, "힘으로는 천하 제일"이라던 초나라 귀족 항우를 끝내 오강에서 목을 긋게 만든 희대의 건달, 유방은 마침내 한나라를 세웠다.
유방은 참 묘한 인간이었다.
왕족도 아니고, 장군도 아니고, 성인군자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술 마시고, 농땡이 치고, 사고 치고, 큰소리치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인간이었다.
완존히 김가중 판박이다.
참고로 illogical nude artist 金嘉中은
상식을 의심하는 예술가다.
그의 예술은 누드가 아니라 발상을 벗긴다.
그의 철학은 역행론(逆行論).
"달마가 동쪽으로 가면, 너는 서쪽으로 가라."
옳고 그름보다 다름을 먼저 선택한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걸을 때 혼자 삐딱선을 타는 것이 그의 창작법이다. 그에게 사진은 완성하는 대상이 아니라 망가뜨리는 대상이다.
비틀고, 꼬고, 뒤집고, 해체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사진 비틀기', '꽈배기 사진', '사진 망가뜨리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글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는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폭발시키는 무대다.
허풍과 과장, 허장성세와 블랙코미디를 뒤섞어 진지한 역사를 통쾌하게 뒤집는다.
그는 이것을 '뻥의 예술'이라 부른다.
김가중에게 정도(正道)는 없다. 답도 없고, 밑도 끝도 없다.
늘 삐딱선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독자는 어느 순간 웃고 있고, 웃다가 문득 인간과 권력의 벌거벗은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김가중의 누드철학이다.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벗기고,
고정관념을 벗기고,
역사의 화장을 지워 인간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
그는 오늘도 역사를 곧게 쓰지 않는다.
사정없이 비틀고,
꽈배기처럼 꼬고,
뒤집어엎는다.
왜냐하면,
곧은 역사에서는 사실만 보이지만,
비틀어진 역사에서는 홀랑 벗은 진실 속에 감춰진 인간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는 이상하다.
공부 잘한 사람은 과거에 떨어지고, 건달은 황제가 된다.
역사는 실력이 아니라 타이밍이 쓴 소설인지도 모른다.
유방은 천하를 얻고도 늘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다.
"사람들이 내가 진짜 실력이 있어서 황제가 된 줄은 알까?"
아니다.
속으로는 모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항우가 재수가 없었지."
이 말이 유방의 자존심을 밤마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이 몇 순배 돌았다.
건달 시절부터 내려오던 특기가 발동했다.
술이 들어가면 세상이 동전만 해지고, 하늘도 자기 집 천장처럼 보인다.
유방은 술상을 탕 치며 외쳤다.
"좋다! 흉노부터 박살 내자!"
신하들은 말렸다.
"폐하... 그쪽은 좀..."
하지만 술 취한 영웅에게 브레이크는 원래 없는 법이다.
기원전 200년.
유방은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북방으로 올라갔다.
속으로는 이런 계산이었다.
'진시황도 못한 일을 내가 해내면 이제 누구도 나를 건달 출신이라 부르지 못하겠지.'
그러나 세상은 술기운만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상대는 묵돌이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았다.
흉노말로 '영웅'.
영웅이 영웅을 만난 것이 아니라, 초원의 늑대가 술 취한 호랑이를 만난 셈이었다.
평성 백등산.
이곳에서 역사는 방향을 틀어 버렸다.
유방은 사방이 포위되었다.
7일.
물도 제대로 못 마셨다.
밥은커녕 침도 삼키기 어려웠다.
황제는 산속에서 말라 갔고, 말들은 황제를 걱정했다.
신하들은 하늘을 쳐다봤고,
하늘은 묵돌을 쳐다봤다.
그때 유방의 머릿속에서 번쩍 떠오른 것은 병법이 아니었다.
건달 시절의 생존 매뉴얼이었다.
"힘으로 안 되면 사람 마음을 사라."
그는 금은보화와 비단을 한가득 싸서 묵돌의 총애를 받는 연지에게 보냈다.
그리고 편지 한 장도 곁들였다.
"나는 하늘이 점찍은 사람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건달이 되었고,
건달에서 황제가 되었다.
여기서 내가 죽으면 하늘도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기가 막힌 논리였다.
논리라기보다 술자리에서나 통할 김가중 식 궤변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상은 이런 궤변에 꼴깍 넘어가 아낌없이 홀라당 벗어제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뇌물이 통하지 않는 시대는 아직 인류가 발명하지 못했다.
금은보화는 입을 열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입을 열게 만든다.
연지는 묵돌의 곁으로 갔다.
교태는 칼보다 부드럽고,
속삭임은 창보다 깊숙이 들어간다.
배갯머리에서 결정되지 않은 역사는 생각보다 드물다.
영웅은 칼에 죽는게 아니다.
여인의 초승달 같은 눈썹이 그려낸 눈웃음에 무너진다.
묵돌 역시 영웅이었다.
아니, 이름 자체가 영웅이었다.
그래서 여자 앞에서는 점점 작아지는 남자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갑옷도 사랑 앞에서는 속옷만큼 얇아진다.
김가중의 누드철학
나는 오래전 깨달았다.
누드는 옷을 벗기는 예술이 아니다.
권력을 벗기는 예술이다.
황제의 곤룡포를 벗기면 두려움이 드러난다.
영웅의 갑옷을 벗기면 허세가 드러난다.
그리고 역사의 두꺼운 외투를 벗기면,
그 안에는 욕망과 허영, 두려움과 사랑이 벌거벗은 채 서 있다.
유방도 벌거벗으면 한 명의 겁 많은 인간이고,
묵돌도 벌거벗으면 한 명의 사랑에 흔들리는 남자일 뿐이다.
역사는 위인의 초상화를 그리지만,
나는 그 초상화의 옷을 벗겨 본다.
거기에는 신도 악마도 없다.
웃기게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만 서 있을 뿐이다.
결국 유방은 살아 돌아갔다.
대신 살아남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황녀를 보내고,
비단과 솜과 술과 식량을 매년 바쳤다.
치욕+능욕+굴욕이란 외교문서에 서명했다.
한 황실의 여인을 선우에게 보낸다.
매년 비단과 솜, 술과 식량을 공물로 바친다.
한과 흉노는 형제의 나라임을 인정한다.
천하를 얻은 황제가
초원의 영웅 앞에서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회사원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도장 하나가 한나라 400년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때로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역사를 만든다.
황제는 칼로 천하를 얻지만,
왕조는 굴욕을 견디는 법을 배우며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