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골 잔혹(?) 찰나 비틀기: 렌즈 잔혹사

입력 2026년08월27일 10시06분 김가중 조회수 145

대몽골 여행기. 金嘉中 누드 철학

모델들은 대부분 대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이고,

옷을 벗는 것에 익숙치 않은 지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칭스가 무덤 속에서 덤블링을 치며 먼저 나타났다. 그리고 대제국의 말발굽 소리가 진동하던 초원에, 꾀죄죄한 아시아의 사진쟁이 하나가 들고 나타난 건 칼이 아니라 검은색 거대한 원통형 기계 눈깔(DSLR)이었다. 그리고 그 앞엔 제국의 후예들이라기엔 너무나 수줍어 어쩔 줄 모르는 앳된 소녀들이 뭉탱이로 엉켜 있었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경험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아본 사람보다 카메라를 보면 얼어붙는 사람이 더 많았다.

칭스가 비로소 자신의 위엄이 선 듯 주접을 떤다.

내가 세계를 정복했는데, 저 인간은 여자 열다섯 명 앞에서 왜 저렇게 쩔쩔매는가?”

나도 할 말은 없었다.

대제국의 기마군단은 말을 타고 초원을 휘젓고 다녔지만, 나는 DSLR 하나 들고 맨붕이 떠돌고 있었다. 칭스에게는 활과 칼이 있었고, 나에게는 배터리 17퍼센트짜리 싸구려 카메라가 있었다. 누가 더 불리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거창하게 이름 붙이면 예술적 영혼의 상호작용이었다. 그러나 까놓고 말하면, 어색함과 어색함이 서로 부딪쳐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였다.

 

그래, 이것도 인간 냄새다.’

참 편리한 말이다.

사진이 안 나오면 인간 냄새.

포즈가 어색하면 인간 냄새.

초점이 나가면 인간 냄새.

노출이 틀리면 시대정신.

사진이 완전히 망하면?

그때는 현대미술이라고 우기면 된다.

이것이 바로 가난한 사진가가 살아남는 철학이다.

 

누드 촬영이라는 것도 혼자일 때는 그럭저럭 간단하다.

피사체 하나 놓고 조명 하나 세우고 카메라 하나 들이대면 된다.

그런데 둘이 되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긴다.

셋이 되면 조명이 삐딱해지고,

다섯이 되면 배치가 무너지고,

열 명이 넘어가면 작가의 인격부터 무너진다.

그런데 오늘은 무려 열다섯 명이었다.

열다섯!

이건 촬영이 아니라 인구조사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모델들을 바라보았다.

모델들은 나를 바라보았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문득 위대한 역사적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작가는 손을 머리 위로 올리라거나 몸을 한쪽으로 돌리라거나 비슷한 포즈를 시킨다.

쉽다.

빠르다.

그리고 망하기도 쉽다.

모두 똑같이 세워놓으면 사진은 금방 단체 체조대회가 된다.

나는 그런 사진을 싫어한다.

그런데 싫어한다고 별수 있나.

현장은 이미 체조대회를 넘어 국제재난지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조명은 말을 안 듣고,

삼각대는 삐딱하고,

카메라 배터리는 줄어들고,

모델들은 딱딱하게 굳어 눈치를 살피고,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통역자는 통역을 하다가 본인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오늘은 완벽하게 찍는 날이 아니다.”

진실도 필요 없다.

역사도 필요 없다.

예술의 위엄도 필요 없다.

그냥 살아남자.

 

현장은 수줍음이 마치 몽골 초원에 번진 전염병처럼 온몸을 점령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더 흔들리고, 흔들지 말라고 하면 더 흔들었다. 몸은 사시나무요, 표정은 도망갈 궁리요, 사진은 벌써 부터 망할 조짐이었다.

선명한 사진?

그런 건 애당초 글렀다.

에라, 모르겠다.

사진이 꼭 저승사자의 작두날처럼 칼같이 찍혀야 사진인가.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가는 거고, 초점이 지 멋대로 딴살림을 차리면 그 또한 예술이라고 우겨버리면 그만이다.

페차들의 부속을 주워 모아 조립한 이름조차 모호한 차가 몽골 초원을 달리면 사진기도 덜컹거리고, 작가의 정신도 덜컹거리고, 모델의 표정도 덜컹거린다. 그러니 사진만 멀쩡하게 찍히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요구다.

초점이 나갔다고?

나간 놈 잡으러 뛰어다닐 시간에 다음 사진을 찍으면 된다.

필자는 원래 사진의 겉가죽에 목숨 거는 사람이 아니다. 선명도 100, 색감 98, 콘트라스트 97점 따위의 숫자 놀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면 된다. 내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사진이 얼마나 반짝거리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 무슨 사건이 벌어졌느냐이다.

사진은 결국 사건의 찌꺼기다.

잘 찍힌 사진은 박물관에 가고, 이상하게 찍힌 사진은 술자리에서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나는 당연히 후자를 택한다.

 

하지만

카메라는 나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초점은 엉뚱한 곳을 보고,

노출은 자기 철학을 주장하고,

셔터는 내가 누르기도 전에 자기 의견을 발표했다.

찰칵!

망했다.

찰칵!

또 망했다.

찰칵!

이번에는 뭔가 찍혔다.

 

초원의 지평선은 망각의 선이다. 그곳에서는 사물의 실재보다 실재를 둘러싼 환영이 훨씬 더 육중하게 소용돌이친다. 몽골의 황량한 고요 속에 카메라를 비추었을 때, 렌즈 끝에 걸린 것은 광활한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허무한 존재의 프레임이었다.

 

나는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왜냐하면 사진가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사진을 잘 찍는 능력이 아니라,

망한 사진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실체 없는 무()의 공간에 의미라는 이름의 환각을 주입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등사기의 본질이자 블랙 판타지의 서막이다.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존재하는 것처럼 속이는 현혹의 기술. 이 사기케의 결정판은 옷 벗음이 처음인 모델의 옷가지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모조리 걷어내는 기술이었다.

사실 대단한 기술은 아니다. 그냥 무작정 벗어라고 명령하기에 앞서 은근슬쩍 대화로 푸는 것이다. 대화라고 하기에도 어설픈 횡설수설이지만 그래도 분위기상 이게 먹힌다.

 

하여간 현장의 어색한 긴장을 완화하고 작가와 모델의 상호 친밀도와 믿음을 유발하여 자연스레 나체의 최면술에 걸리게 하는 전형적인 사기술이다. 찰나의 순간, 가식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영혼의 방심을 낚아채는 고등 사술(詐術). 영원과 허무 사이에서 방황하는 연약한 자아를 언어의 그물로 옭아매는 순간이었다.(사기술? 사실 이 모델들과도 정이 들어 헤어질 땐 서로 눈물을 흘리기도....)

 

몽골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초원.”

가장 싫어하는 것은?”

추위.”

사진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슬프고 엉성하고 세상 어떤 초보 인투뷰어도 절대로 하지 못할 엉터리 인터뷰였다.

하지만 완벽했다. 바로 그거였다.

 

무지(無知)야말로 가장 완벽한 픽션이며, 사진의 본질을 관통하는 벼락같은 깨달음이었다. 대상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할 때, 사진가는 그 blank(빈칸)에 온갖 궤변과 숭고한 서사를 마음껏 불어넣을 수 있는 법이다. 알지 못함이야말로 예술이라는 거대한 사기극이 성립하는 유일한 성역이었다.

 

실밥 하나하나 허물 벗기듯 야금야금 옷가지를 들추던 렌즈의 음흉한 눈깔은, 시간이 흐를수록 노골적이고 지독하게 처녀들의 살결을 짓밟고 파헤치기 시작했다.

천장이나 어설프게 비추며 헛기침하던 소극적인 조명은 이제 눈이 멀 만큼 강렬한 직격탄으로 변해 여인들의 살가죽을 내찔렀고, 파렴치하게 수위를 높여가는 노출 요구 속에서도 어느새 때가 쏙 빠진 처녀들은 저희끼리 낄낄대며 이 아수라장을 미친 듯이 즐기기 시작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네들의 무릉도원이라 해야 할까? 아니, 그건 차라리 벗은 몸뚱이들이 엉켜 매캐한 단내와 김을 내뿜는 대중목욕탕이자,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갇혀버린 처녀 수용소의 서막이었다.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이번에는 초점이 맞았다.

기적이었다.

유리 렌즈 너머로 차가운 초원의 바람과 허망한 실재가 선명하게 맺혔다. 사기와 궤변, 그리고 우연이 빚어낸 이 한 장의 환영을 들고, 나는 다시 한번 나직하게 읊조린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다.’.

 

바로 그거였다.

사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그 대답 속에 오히려 사진의 본질이 있었다.

나는 감격했다.

 

 

칭스와 말코가 달려왔다. 완벽한 고등사기의 기적에 박수를 쳤다..

대몽골제국은 말발굽으로 세계를 흔들었지만,

나는 겨우 셔터 한 번으로 세상을 모조리 벗겨내고 있었다.

 

역사는 이렇게 발전한다.

칼에서 카메라로,

말에서 지프로,

정복에서 촬영으로,

그리고 위대한 제국에서

배터리 17퍼센트짜리 사진가의 처절한 생존기로.

그날 내가 얻은 것은 걸작이 아니었다.

더 귀중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사진은 나온다.”

, 작가의 정신이 먼저 나가떨어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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