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날
2004년 2월 11일
에고야.
도대체 이 날짜는 어디서 튀어나온 것이야.
젠장, 이건 아무래도 내가 늙었다는 증거가 틀림없다. 사람이 늙으면 주름보다 날짜가 무섭다.나이보다 연도가 더 무섭다. 특히 2004년같은 숫자를 갑자기 만나면 심장이 덜컥한다.
“내가 이때 뭘 했지?”
기억은 없는데 날짜만 또렷하다. 이놈의 날짜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자다가도 갑자기 달력 한 장이 얼굴 위로 떨어지면 경기하는게 인간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지구를 거꾸로 돌려 시간을 되돌린다지만, 내 경우는 지구와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냥 내 몸만 혼자 역주행을 시작했다.
손등을 보니 주름이 슬슬 사라진다.
“어라?”
얼굴 피부가 팽팽해진다.
“어어?”
몸의 기능들이 하나씩 살아난다.
“이거 뭐야?”
병원 기록을 뒤져보니 더 가관이다.
혈관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무려 20년이나 젊어져 있었다.
의사가 기록을 보더니 한참 동안 나를 쳐다봤다.
“선생님, 혹시 쌍둥이 형제가 있습니까?”
“없는데요.”
“그럼…… 본인이 맞습니까?”
“저도 그게 의심스럽습니다.”
의사도 나도 침묵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오른 것이 있었다.
장수말벌!
얼마 전 북한산 칼바위를 오르다가 장수말벌 한 마리가 내 뒷덜미를 아주 호되게 쏘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거의 조상님을 만날 뻔했다.
그런데 혹시 그 독이 회춘의 묘약이었던 것은 아닐까?
장수말벌이 나를 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리셋 버튼을 눌렀던 것은 아닐까?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김가중의 인생에서 과학적 근거가 언제부터 필요했단 말인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어야 예술이고,설명까지 되면 논문이지 소설이 아니다.
아무튼 컨디션 하나는 끝내준다.
북한산 칼바위 능선이고 보국문 능선이고, 예전 같으면 “오늘은 죽겠구나” 하면서 올라갔을 길을 이제는 그냥 쏘다닌다. 내 몸이 젊어진 것이 아니라, 늙은 몸에 젊은 정신이 몰래 탑승한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문득 몽골 누드여행기 자료를 뒤지다가 이 기록이 튀어나왔다.
2004년 2월 11일.
그래서 생각했다.
‘그래, 이참에 건강 이야기도 한번 해보자.’
제목은 거창하게,
《김가중 건강 오디세이》.
건강을 논하는 순간부터 이미 건강하지 않은 인간의 냄새가 나지만 뭐 어떤가.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런데 건강 오디세이를 쓰다 보니 갑자기 몽골 이야기가 끼어들었다.
오늘은 야외 누드 퍼포먼스를 해보기로 한 날이었다.
여고 1년생 두 명은 불참했고, 성인 모델 13명이 참여했다.
목적지는 몽골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휴양지라는 곳.
이름이……
데레지?
아마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 지명은 늘 물음표를 달고 있다.
산도 있고 강도 있고 숲도 있고 기암괴석과 협곡도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관광지로서는 천국이고 사진가에게는 지옥이었다.
날씨는 여전히 살인적이었다.
바람이 한번 불면 얼굴이 아니라 영혼부터 얼어붙을 것 같았다.
나는 모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과연 가능할까?’
옷을 벗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벗고 몇 초나 버틸 수 있느냐였다.
사진가는 예술을 말하지만 자연은 예술 따위 모른다.
영하의 바람에게“이것은 예술입니다”라고 설명해봐야
바람은 대답한다.
“그래서?”
그리고 사람을 얼린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세웠다.
버스 안에서 최대한 찍는다.
버스가 달린다.
광야가 뒤로 날아간다.
카메라는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외쳤다.
“좋아! 영화다!”
머릿속에는 갑자기 영화 **〈스피드〉**가 떠올랐다. 산드라 블록? 그녀가 나의 누드 속에 끼어 있었지 아마...
질주하는 버스.
끝없이 펼쳐진 몽골 초원.
창밖으로 날아가는 눈발.
그리고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누드 퍼포먼스.
나는 이것을 예술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제목도 이미 정했다.
《광야를 달리는 누드》.
부제는,
〈버스가 멈추면 예술도 끝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버스가 너무 흔들렸다.
찰칵!
“어?”
찰칵!
“어어?”
찰칵찰칵!
사진을 확인해보니 모델은 두 명, 세 명, 네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나는 환호했다.
“대박!”
조수가 물었다.
“왜요?”
“다중노출이다!”
“선생님, 그거 흔들린 겁니다.”
“예술은 흔들림에서 태어난다.”
조수가 다시 사진을 봤다.
“그럼 이건요?”
“초점이 하나도 안 맞는데요.”
나는 잠시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존재의 불확실성을 표현한 거다.”
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모든 실패작은 작품이 되었다.
흔들리면 동적 미학.
초점이 나가면 존재론적 해체.
노출이 틀리면 빛의 반란.
사진이 완전히 망하면……
나는 가장 어려운 철학적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아직 시대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가슴에 안았다.
그 순간 버스가 덜컹했다.
나는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쿵!
모델들이 비명을 질렀다.
조수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나는 머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괜찮아. 이것도 퍼포먼스야.”
“무슨 퍼포먼스인데요?”
“사진가의 고통과 예술의 탄생.”
그런데 버스 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왜요?”
기사가 창밖을 가리켰다.
눈보라 속에 무언가가 보였다.
말떼였다.
수백 마리의 말들이 눈밭을 헤치며 달리고 있었다.
순간 모두가 조용해졌다.
몽골의 광야가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오늘 우리가 찍으려던 것은 단순한 누드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젊음도 아니고, 몸도 아니고, 회춘도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2004년에서 2026년으로.
그리고 다시 그보다 더 먼 과거로.
말들은 시간을 모르고 달리고 있었다.
몽골의 바람도 날짜를 몰랐다.
산도 나이를 몰랐다.
오직 나만 달력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혼잣말했다.
“그래…… 결국 늙는 것은 인간이고, 늙지 않는 것은 광야로구나.”
그때 장수말벌 한 마리가 버스 창문에 부딪혔다.
나는 기겁했다.
“으악!”
조수가 웃었다.
“선생님, 회춘하실 기회 아닙니까?”
나는 즉시 창문을 닫았다.
“한 번이면 충분하다!”
버스 안이 폭소로 뒤집어졌다.
그리고 나는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찰칵.
그 순간 찍힌 사진은 완벽했다.
초원.
눈.
말.
사람.
그리고 달리는 버스.
나는 사진을 바라보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잠시 침묵.
“망한 사진은 아닌 것 같다.”
조수가 물었다.
“작품명은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김가중 건강 오디세이》
부제는 더 거창하게 붙였다.
― 장수말벌에 쏘이고 시간을 잃어버린 사진가의 몽골 역주행기.
물론 전부 뻥이다.
하지만 사진가에게는 가끔 뻥도 필요하다.
현실만 가지고는 예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에 조금의 거짓말을 보태고,
거기에 철학을 한 국자 붓고,
마지막으로 김가중식 뻔뻔함을 한 바가지넣으면……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날 몽골의 버스는 다시 광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시간도 달렸다.
버스도 달렸다.
말들도 달렸다.
그리고 나도 달렸다.
영하30도 무릎부터 시리다. 눈알도 시리다.
역시……
회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 콩트엔 이게 필요할 것 같다. 사실이 핸드폰에 기록 되었으니....
유튜브 숏폼뉴스
https://www.youtube.com/@%EA%B9%80%EA%B0%80%EC%A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