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도착한 곳은 어느 산골이었다.
기암괴석이 삐죽삐죽 솟아 있고, 군데군데 눈이 검게 벗겨져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다.
하얀 순결의 눈밭에 피빛 물감을 뿌려놓고, 그 위에서 제를 올리는 것.
예술가가 이런 생각을 하면 대개 사람들은 철학이라고 한다.
미친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면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나는 사진가이므로 그냥 예술이라고 우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스태프들도 도착하지 않았고, 칭기즈의 여인들은 버스 안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스태프들은 까맣게 소식이 없고, 촬영 장소는 빵점짜리다. 버스 안의 '칭기즈의 후예들'은 미동조차 없다. 알몸 연출을 위해 차 안에서 옷을 벗어던졌으니, 이미 할 일은 다 했다는 표정들이다.
“우리는 이미 버스 안에서 옷도 벗었는데 뭘 더 하라는 거야?”
그 표정이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가끔 급한 불이 떨어지면 아가씨들은 버스에서 내려 누가 보든 말든 길가에 새하얀 탐스러운 엉덩이를 까고 앉아 볼일을 본다. 꿀꺽 침이 넘어갔지만 차마 카메라를 겨누진 못했다. 카자흐스탄 촬영 때 도로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용변을 보던 아낙들을 보고 경악했었는데, 몽골 여인들도 오십보백보다. 하긴, 지평선만 아득한 광활한 유목의 땅에 변소가 따로 있을 리 만무하고 몸을 숨길 풀포기조차 희귀하니 지극히 당연한 생존법이다. 온 가족이 '겔'이라는 천막 하나에 비벼 사는데 무슨 체면과 격식이 설 자리가 있겠는가?
생각해 보니 내 어릴 적 고향 풍경도 다를 바 없었다. 동네 아낙들은 길가에서 몸빼 바지를 내려 볼일을 보곤 했다. 특히 섶이 짧은 저고리를 입고 물허벅을 이고 걸을 때면, 위로 딸려 올라간 저고리 밑으로 커다란 젖가슴이 탐스럽게 드러나곤 했다. 훗날 외국인 사진가들의 프레임에 담겨 박물관에 남게 된 이 풍속을, 당시 우리네 방언으로는 ‘벼슬했다’고 불렀다. 갓 시집온 새댁이 사내아이를 낳은 어미가 훈장처럼 젖이 불어 엄청나게 커진 유방을 내놓고 다니며 자랑스러워했던 그 시절의 풍경이다.
참 묘하다.
지금은 조금만 노출해도 난리가 나는데, 불과 한세대전에는 그것이 자랑이었다니... 인간은 옷을 벗으면서 문명화된 것이 아니라, 옷을 입고부터 벗는 방법을 복잡하게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저 멀리서 버스 한 대가 나타났다.
드디어 스태프들이 도착한 것이다. 빌어먹을 그 유명한 ‘코리안 타임(Korean Time’이 몽골로 이사 와서 진행중이었다. 이 단어는 한국 현대사의 진풍경과 서구식 ‘시간관념’이 충돌하며 만들어진 아주 미묘하고도 아이러니한 문화적 유산이다.
약속 시간은 안내판일 뿐
‘코리안 타임’은 본래 6·25 전쟁 직후 미국인들이 약속 시간보다 한참 늦게 나타나는 한국인들의 습관을 꼬집거나 자조적으로 부르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 단어가 가진 진짜 블랙코미디는 ‘느긋함’과 ‘극단적 조급함’의 기묘한 공존에 있다. 약속 자리에는 정작 30분, 1시간씩 늦게 터덜터덜 나타나는 사람들이, 정작 일을 시작할 때는 "빨리빨리!"를 외치며 난리를 친다. 약속 시각은 어겨도 되지만, 자신의 일을 빨리 처리해 주지 않는 것은 참지 못하는 역설적인 시간관념, 참 이상한 셈법이다. 옛날 시골이나 유목 사회에서 시간은 '시계 바퀴'가 아니라 '해의 높이'와 '마을의 온정'으로 흐르곤 했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더라도 "오는 길에 누구를 만나 인사 좀 나누느라", "길가에서 잠시 일을 보느라" 늦었다고 하면 허허 웃으며 넘어가는 체면과 인간미의 시간이었다. 오히려 너무 정확하게 시계 눈금을 따지는 사람에게 "야박하게 왜 이러나", "각박하게 굴지 마라"라며 눈총을 주던 풍토도 코리안 타임을 유지시킨 일종의 '정(情)' 문화였다. 불과 반세기도 흐르지 않았는데 재밌는 점은,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시간이 칼같이 지켜지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하철은 초 단위로 정차하고, 배달 음식은 분 단위로 도착하며, 약속 시간에 5분만 늦어도 스마트폰으로 미안하다는 문자를 연신 보내야 된다. 이제 '코리안 타임'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지만, 정작 옛 시절의 그 허술하고 넉넉했던 시간의 여유가 가끔은 그립게 느껴지기도 하는 씁쓸한 아이러니다. 한국에선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 그 코리안타임이 몽골에선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었던것이다.
나는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대뜸 말했다.
“장소 옮깁시다.”
스태프들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아마 속으로 이랬을 것이다.
‘이 인간이 드디어 미쳤구나?’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울란바토르 일대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촬영 장소였다. 협곡이 있고, 기암괴석이 있고, 산이 있다. 몽골에서 이런 장소를 보려고 살벌한 눈길을 목숨 걸고 찾아왔는데, 사진가라는 인간은 첫마디로 장소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당연했다.
“왜요? 여기 유명한 곳인데요.”
“그러니까 싫다는 겁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손을 휘저으며 설명했다.
“이런 협곡이나 기암괴석은 다른 나라에도 많아요.”
“…….”
“특히 서울 북한산 우리 집에서는 이런 산골짜기는 문 열고 나가면 나옵니다.”
“…….”
“바위도 많고 산도 많고 계곡도 많아요. 심지어 관광버스까지 있습니다.”
그 순간 스태프들의 표정에서 국가적 자존심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더욱 신이 났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습니까? 몽골을 찍으려고 왔지요.”
“그렇죠.”
“그런데 왜 한국에서도 찍을 수 있는 산을 찍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결정타를 날렸다.
“나는 몽골에서 몽골을 찍고 싶습니다.”
이 얼마나 간단한 철학인가.
사진가는 남들이 찍지 않은 것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여행을 가면 이상하게 남들이 많이 찍는 것부터 찍는다.
유명하니까.
멋있으니까.
관광 안내책자에 있으니까.
결국 세계 어디를 가도 똑같은 사진이 나온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몽골까지 와서 한국 같은 산을 찍는다면, 비행기표는 왜 끊었는가. 차라리 서울에서 북한산이나 찍고 말지. 그래서 나는 말했다.
“바위 치우고 눈밭으로 갑시다.”
스태프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여기는 몽골입니다.”
“네.”
“그러니까 산 말고 끝없는 눈을 찍어야 합니다.”
“그런데 눈밭밖에 없는데요?”
“바로 그겁니다.”
사진가란 참 이상한 인간이다. 남들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남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산이 있으니 산을 버리고, 바위가 있으니 바위를 버리고, 눈밖에 없는 곳에서 눈을 찾는다. 이쯤 되면 예술인지 정신병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몽골에서 가장 몽골다운 것은 기암괴석이 아니라, 저 끝도 없이 펼쳐진 하얀 눈밭일 것이다.
그리고 그 눈밭 한가운데서 피빛 물감을 뿌리고,
누드 몇 명 세워놓고 사진 한 장 찍으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할지, ‘왜 저 지랄을 했느냐’고 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다. 사람들이 모두 이해한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라 설명서일 가능성이 높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