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이슈다!’ 김가중 식 역설예술론 한국사진방송 160126 화요강좌 동영상중계3
얼마 전에 사진을 엿 먹이는 사진들
(http://www.koreaarttv.com/detail.php?number=31331&thread=11r01r01)이란 글을 내서 욕을 많이 먹었다. 아주 오래전에 월간지에 글을 기고할 때 쓰레기 같은 사진들이란 글을 내어 맞아 죽을 뻔 한 적도 있다. 말이 씨가 되어 사진의 원흉이 된 기억들이다.
몇 년 전에 박병문 작가와 친해져 그의 작품을 열람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지금은 박병문 작가가 ‘아버지는 광부였다.’로 다큐멘터리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필자를 만났을 즈음만 해도 그의 사진주제는 야생화였다. 그는 그즈음 야생화로 이름을 날려 많은 이들이 그에게 야생화 사진을 사사 받는 등 야생화에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 해 봄인가는 그의 주최로 금대봉의 야생화 출사를 가서 태백준령을 넘어보기도 했다.
후에 그의 사진들 중에 탄광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작품을 보고 ‘이 작품들은 대단한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다.’ 라는 생각을 하였고 그에게 다른 사진들(야생화와 오투리조트를 배경으로 한 운해 등 풍경사진이 매우 좋았음에도) 다 치우고 이 사진으로 승부를 걸라, 고 강력히 권했다.
다행히 동아일보 김경제 부장과 한겨레 신문의 곽윤섭 기자 등이 그 진가를 높이 평가하면서 박병문의 다큐멘터리 사진들은 최근 들어 사진가로선 메스 컴에 가장 각광받는 작가가 되었다.
여기서 태백산 운해나 꽃 사진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필자 역시 아름다운 풍경사진과 꽃 사진 특히 생태사진엔 대단히 감동을 받곤 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필자만 감동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감동 받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진전의 심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오는 사진들은 바로 이런 사진들이다. 누구나 좋아하니까 이런 사진들에 표를 던지고 늘 점수가 젤 높게 나온다. 하지만 점수가 높게 나와도 큰 상은 늘 다른 사진으로 뽑힌다.
필자가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 미워하기 전에 왜? 란 단어를 던지고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들과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한 테이블에 앉은 목사님들이 좋은 사진의 기준에 대해서 물었다. 참 어려운 대답이다. 답이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우리 방송교육모임에서 역으로 질문해 보니 저마다 답을 내는데 정말 다 맞는 답이다. 그 질문을 한 목사님도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분명히 가지고 필자를 시험을 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시험하려 말라.” 하고 엄청나게 화를 발칵 냈던 사실을 잊어버렸나 보다.
그 목사님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하는 사진은 계도성 사진 즉 사진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칠 수 있는 교도용 사진이 젤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라이프지 표지를 장식했던 독수리가 죽어가는 아이를 먹으려고 기다리는 사진, 베트남 전 때 네이팜탄이 터져 발가벗은 채 울면서 도망쳐 나오는 소녀를 촬영한 사진을 예로 드셨다. 하지만 필자가 누드전문 작가라는 말에는 안색이 바뀔 정도였다. 좋은 사진은커녕 당연히 아주 나쁜 사진이란 생각이셨을 것이다.
과연 누드사진은 나쁜 사진일까?
아름다운 꽃 사진, 아름다운 풍경 사진, 복사꽃 진달래꽃이 만발한 ‘나의 살던 고향’ 은 정말 좋은 사진이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제일 비싼 사진 축에 드는 사진은 수십억짜리 독일의 라인강변을 찍은 아주 평범한 사진이다. 아름다운 나무가 강변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유람선이 강심을 가로지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탁한 색깔의 강물이 가득하고 희뿌연 그저 그런 사진이다.
사진 값이 비싸다고 젤 좋은 사진일까?
“사진은 이슈다, 아니 예술은 이슈다!” 이것은 필자의 지론이다.
앤디워홀은 살아생전 작품 값이 1000달러정도였다. 그리거나 찍거나 한 것이 아니고 인쇄를 하였다. 대량으로... 그리고 죽은 후에 그의 작품은 수억씩 나가는 비싼 작가가 되었다. 살아생전 모양새도 별났고 성질도 특이했는지 그를 죽이려고 누군가 총을 쏘았는데 총알이 머리를 스치고 뒤에 있던 작품에 구멍을 내었다. 이런 스토리들이 그의 작품을 상종가를 치게 하지 않았을까?
고흐는 살아생전 달랑 한 점의 작품을 400프랑에 팔아 보았다. 그리고 열 받아 자신의 귀를 낫으로 자르고 권총을 사람에게 쏘기도 했다. 죽은 후 그는 엄청나게 비싼 작가로 부상했다.
사진가 만 레이는 미국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마르셀 뒤상을 만나 프랑스로 이주한 이후 뒤상의 도움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 즈음 피카소도 친구들의 덕으로 세계제일의 부자 예술가가 되었다. 세탁소라 불리는 낡은 뒷골목에서 밥도 굶을 정도로 가난했던 피카소였다.
뒤상은 그 즈음 변기를 사다가 전시를 하고 예술작품이라고 우긴다. 백남준은 바이얼린에 개 줄을 달아 끌고 다니는 퍼포먼스로 급격하게 이름을 내기 시작했다. 바일얼린은 반드시 켜야만 되는가?
그의 백미는 악수하러 달려오는 클린턴에게 자신의 성기를 내민 것이다.
“예술은 이슈다!” 작가는 자신만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필자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