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2]고구려의 후예 테무친
청계천
개천바닥에 각목들이 무수히 세워져 있다. 각목들의 위에는 검게 퇴색된 판자들이 얼기설기 얼켜있고 그 위에는 너덜거리는 루핑쪼가리들이 덮여 있다. 청계천의 뚝방촌 풍경이다.
그 판자촌 아래 온갖 오물들과 쓰레기들이 널려 있는 개천바닥이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한 녀석이 가느다란 비닐호스가 달린 요상하게 생긴 기구를 주워들었다.
“테헷 ~~ 거시기다.”
‘“그기 뭔데...?”
“똥치들이 거시기 속에 이걸 집어넣어”
녀석이 다리를 기마자세로 벌리고 사타구니 사이로 그것을 밀어 넣는 시늉을 한다.
“거기다 그걸 왜 넣는데?”
“아아가 안생길라카믄 이길 넣야 된다.”
르프? 아마도 맞을 것이다.
당시에 어린 우리들은 각목사이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다니며 킥킥 거리며 놀곤 했다
때로는 위에서 작은 문이 벌컥 열리며 요강단지의 오물이 쫘악 쏟아지곤 했다. 그 오물을 용케 뒤집어쓰지 않고 피해 다니는 스릴도 우리들의 놀이중의 하나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인네가 시커먼 하체를 구멍사이에 걸치고 배설을 하는 장면도 훔쳐볼 수 있었다. 우리들이 똥치굴이라 부르던 그곳의 여인네들은 부끄럽다는 말이 무엇이 알지 못하는 별종들이었다. 하긴 유독 이동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우리네는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았고 아낙들은 어디에서고 푸짐하고 허연 엉덩이를 까 내리고 쏴~와 소리가 나게 사자처럼 포효하며 방광을 훑어내곤 했다.
주다야싸 보리밭
주간엔 다방으로 밤이면 싸롱으로 변모하는 이상야릇한 그 업소의 이름은 보리밭이었다. 보리는 발음도 그렇지만 생긴 모습이 아주 해학적이다. 청계천의 한 모퉁이 지하에 있었다.
퍽 악 퍽 악
몇 분 후 황소개구리의 눈깔을 희번덕이며 사장 놈이 허리춤을 추스르며 밀폐된 룸의 문짝을 밀쳤다. 보리밭의 사장은 왕방울 눈깔에 허리춤이 굵은 배불뚝이다.
“야! 다음, 누구야? 아니 한 꺼 번에 다 들어가. 실수 없이 깔끔하게 처리해!”
“예썰, 사장님 염려 붙들어 놓으십쇼. 한 두번 해 본 장산교? 숙달된 조교들 아임니껴?”
웨이터/보조/홀서빙 급구, 고소득 보장
당시 주요 일간지들의 지면 중 절반은 이렇게 짤막한 한줄 광고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이 광고에 현혹되어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어둠의 고통 속으로 빠져 들었을까?. 훗날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던 이른바 “웨타장사” 라고 불리는 추잡한 장사였다. 깡촌에서 무작정 상경을 하여 갈 곳 없는 촌뜨기 처녀들에게 홀서빙 고소득 보장은 발렌타인데이에 지천으로 나부대는 초컬릿보다 더 달콤한 사탕발림이었다.
홀 서빙의 첫 퍼포먼스는 처녀를 버려야 되는 일이었다.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는 것과 아주 흡사한 통관의례였다. 걸레보다 더한 몸뚱이가 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 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신문 광고란 낚시에 걸린 가엾은 아가씨는 돌림 빵이라 불리는 이 더러운 짓거리에 희생이 되어야 되었다.
아가씨들은 세상의 물정을 채 깨닫기도 전에 꽃 봉우리가 마구 짓밟혀 나락으로 떨어지는 좌절이 통관의례였지만 청년들은 보증금을 내는 것이 소림통천문의 통관의례였다. 시골의 오두막을 떠나면서 달걀을 훔쳐 팔고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나 바꿔 빤스 고무줄 속에 감춰둔 피 같은 돈을 꺼내 상납해야 되었다. 말은 보증금이지만 단 한 번도 이 돈을 돌려준 사장은 없었다. 사장에게 이 수입은 물장사로 번 돈 보다 엄청난 수입이었다. 술장사 커피장사 밥장사는 항상 적자였다. 온갖 구린내와 퀴퀴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이 음침한 지하실에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려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사실 사장에게 장사는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다. 사장은 자신의 수하에 몇 명의 똘마니들을 거느리고 본격적으로 인간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 똘마니들이 하는 일은 보증금을 내고 취직을 한 웨이터와 웨이터 보조들을 무자비하게 협박하여 달아나게 만드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밤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어깨들이 손님을 가장하여 술판을 거하게 벌려 술과 과일들을 동이채로 먹어치우곤 언제나 손가락으로 짝 긋고 나가버린다.
외상, 황제처럼 서비스를 받으며 밤새워 먹어치운 이들의 술값은 웨이터가 책임져야 되는 것이 이 바닥의 룰이었다. 밤새도록 시달린 웨이터와 보조들은 날이 밝으면 보리알이 동동 떠다니는 멀건 보리 삶은 죽 한 그릇을 후루룩 마시곤 외상 값 받으러 나가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그러나 외상값을 시원스레 받아냈다는 웨이터들의 무용담은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전해진 적이 없다.
사장의 똘마니들은 그런 그들을 골방에 몰아넣고 얼차려를 시켰다.
사흘거리로 새로운 아가씨들과 웨이터와 보조들이 순환되었다. 사장과 똘마니들의 수완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희생물들이 줄을 이어 지하실을 드나들었다. 당연히 이들의 수법은 더욱 교묘해지고 더욱 잔인해졌다.
이건 사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지?
이제야 이 인간들의 수법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돌림 빵으로 너덜거리는 딸고(그녀의 부모들은 딸을 그만 낳고 싶어 딸고만이란 이름을 지어 그녀의 이름은 딸고가 되었다.)를 만나 너 그렇게 윤간을 당하고 억울하지도 않냐? 경찰서에 같이 가보자. 하지만 딸고는 자신의 팔자로 돌렸다. 체념이란 무서운 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이 병은 치료가 절대로 불가능 한 인류 최대의 질병이다. 그리고 이 질병보다 더 무서운 고질병은 경찰서 가봐야 더욱 곤경에 빠진다는 사실에 경외심을 가진 없는 자들의 무기력증이였다. 경찰과 업소의 사장들은 친 형제보다 더 끈끈한 사이였다. 그 시절엔 다 그랬다.
궁여지책, 사라져간 웨이터와 보조들을 찾아 진정서를 받아 함께 고발할 작정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곳은 돈암동의 산동네였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 지금은 한신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아침햇살을 받아 찬란히 빛나는 아름다운 동네가 되었지만 이 아파트가 들어서기 이전의 이 동네는 한국의 대표적인 슬럼가였다,
두 사람이 비껴가지 못 할 만큼 좁디좁은 골목 쪽으로 뚫려 있는 작은 문엔 문이 없다. 대도무문이 아니고 소도무문이었다. 너덜거리는 널판지로 만든 문짝마저 달 형편이 안 되어 거적때기를 치고 사는 집이 더 많았다.
피골이 상접하여 해골같이 생긴 남자가 거적을 들치고 나왔다.
나무막대기에 의지하여 겨우 몸을 가누고 서있는 그 남자는 ET와 흡사했다. 오랜 병마에 시달려 거무튀튀하게 변색된 입술에 침을 바르며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와 발음으로 그가 요구하였다.
“우리 아이는 이 일에 개입시키지 말아 주시오. 그 명단에서 이름을 빼 달란 말이요 제발”
보복, 그것은 이들에게 걷잡을 수 없는 공포였다. 그리고 공권력과 유착되어 있는 업소의 권력자들을 건드렸다가 동사무소에서 빈민구제용으로 배급되는 밀가루 한 종지마저도 끊어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거였다. 황소개구리의 추잡한 범죄행각을 증언해줄 증거를 이들에게서 더 이상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금새 깨닫고 말았다.
남은 유일한 방법은 놈들을 자극하고 몸으로 때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매우 쉬었다. 그네들은 혀 보다는 항상 주먹으로 모든 걸 말하는 것에 숙달되어 있는 조교들이었다.
허나 좁은 룸 안에서 너댓명에게 더구나 사람 패는 것에 이골이 난 놈들에게 엉긴 것은 한나라 고조 유방이 흉노의 선우 묵돌에게 삿대질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멍청한 퍼포먼스였다. 스트레이트, 어퍼컷, 훅, 온갖 묘기를 다 부리며 무차별 폭행을 하던 녀석들이 때리다 지쳐 쉬고 있었다. 대여섯 시간 만이었다. 다행인 것은 녀석들은 지쳐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비 오 듯 땀을 흘리며 곤죽이 되었지만 정작 무방비로 주먹과 발길질을 당하고 있는 나는 아직 기운이 넘치고 있었다. 녀석들이 잠시 긴장을 푼 사이 느닷없이 문을 박차고 달아나 질주하는 자동차사이사이를 영화처럼 빠지며 도망칠 수 있었다. 필사의 추격전은 파출소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것을 끝으로 마감되었다. 파출소에서 지정해 주는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고 고발을 접수 했다.
피똥
매일 수차례에 걸쳐 엄청난 하혈이 시작되었다. 피똥을 싼다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그것이 사실일 줄이야...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어려운 무기력증도 수반되어 달포이상 누워서만 지냈다.
두어 달 후 동대문 경찰서 깍두기 형사는 못 잡았다고 미안하게 되었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연장을 한 달 더 하겠으나 가망 없고 그렇게 해도 못 잡으면 기소중지인가 뭔가로 처리를 한다고 했다. 기소중지? 아마도 그것은 멍청하고 힘없고 억울한 피플들을 달래주는 가장 합법적이고 굉장히 위대한 법인 것 같았다.
녀석들은 기소중지가 되었고 보리밭으로 내려가는 지하계단엔 여전히 젊은 아가씨들과 청년들이 오르내렸고 황소개구리와 똘마니들도 풀방구리 드나들 듯 드나들었다. 그들의 인간장사는 더욱 성업 중이었던 것이다.
동대문 경찰서, 깍두기 형사가 마구 짜증을 냈다.
“야 나는 네 얼굴만 보면 오바이트가 난다. 오늘도 너 때문에 신경성 대장염이 도져 설사가 싸르르 오고 있다. 임마 빨리 좀 사라져 주라 나 관장하러 뒷간부터 가야겠다.”
“그게 왜 내 탓입니까? 범죄자들 뒤 봐주느라 얻은 병 아닙니까?”
“이 자식이 정말, 누가 누구를 봐조?”
“놈들이 매일 버젓이 드나들며 더러운 장사를 여전히 하고 있는데 왜 안 잡아들입니까?”
“내가 놀면서 안 잡았냐? 녀석들이 워낙에 신출귀몰해서 ...”
“놈들이 홍길동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제가 골목에서 지켜보니 한 시간만 기다려도 충분 할 텐데....”
“내가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 받아먹고 살기에 참는데 너 제대로 한번 걸리면 뼈다귀를 추릴 줄 알어?”
피똥이 솟구칠 때면 달려가 깍두기 형사를 몰아댔다. 깍두기 형사도 나름 사정이 있을 터였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윤간을 당했다는 딸고나 돈암동 사글세 움막집의 거적을 들추는 웨이터 보조를 구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 그에 비해서 황소개구리는 때마다 두툼한 봉투를 슬그머니 들이밀고 비번 날 목욕탕에서 때 빼고 광내고 보리밭 계단을 내려서면 향기만으로도 기가 생동하는 진귀한 술과 산해진미를 차려 내오고 나긋나긋한 새내기들이 수없이 열락으로 빠져들게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온몸으로 육탄공세를 벌이는 아가씨들과의 쾌락에 길들여진 깍두기에겐 기소중지조차 과분한 처사였을 것이다.
장춘진인 구처기
역사에 길이 남은 이 도사는 명상 중에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경기를 일으켰다. 번쩍 눈을 부릅뜬 그는 하늘을 우러러 크게 포효를 한 후 명아주나무 지팡이 한 개만을 움켜진 채 질풍같이 달렸다.
산동에서 유럽까지 만리가 넘는 길을 단숨에 내달려 살인에 광분하고 있는 칭기스칸에게 알현을 청했다. 그가 축지법에 달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록엔 걸어서라고 되어 있다.
“인간사는 거대한 퍼즐로 짜여 있어 한 개인이 그 퍼즐조각을 빼서 바꾼다고 새판으로 짜여 지는 것은 아니요. 칸께서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이 먼 곳까지 정복을 하고 있소만 그것은 사람이 할 일도 아니고 부질없는 살인은 퍼즐의 판을 뒤엎어 카오스를 만들 뿐이요.” 그의 설법은 대략 이런 요지였다.
나의절친 대칸은 영리한 사람이었다. 장춘진인이 어떤 설법을 했던 그것이 중요하진 않았다. 장춘진인과 대좌 자체로 이미 큰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대칸은 전쟁을 멈추었고 귀로에 올랐다.
깍두기 형사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도록 약을 올리고 나온 나에게 나의 절친 대칸이 느닷없이 왜 다가왔는지 모를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사는 거대한 퍼즐이라 누군가가 그 조각을 한 개 빼내었다고 그 판이 새롭게 재편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막연하게 카메라가 그리웠다.
예술? 그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다 벗어버리고 이 세계에 천착하고 싶었다.
예술?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다 초월하고 이 세계의 늪에 함몰되고 싶었다.
얼마 후 황소개구리가 만나자고 연락을 보내왔다.
그와 그의 똘마니를 만나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무척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피똥으로 피폐해진 단전에 힘을 모으고 탁자에 마주 앉았다. 깍두기 형사도 함께였다.
똘마니들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황소개구리가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이걸로 끝내든지, 아니면 애들 감방으로 보내든지 결정해라.”
“사장님은요?”
“나? 나는 이일과 전혀 관계가 없어, 자네를 집단 폭행한 것은 오로지 저놈들의 의지였어.”
깍두기 형사가 수갑을 꺼내들었다. 녀석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형님!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들 감방 보낸다고 형님 득템 되겠십니까? 저희들 앞으로는 착하게 살 테니 너그럽게 아량을 베푸십쇼.”
“형님? 내가?”
봉투를 받아 주머니에 구겨넣고 깍두기 형사가 내미는 서류에 도장을 콱 박았다. 끝장을 보고야 말리라는 애초의 다짐은 장춘진인의 세상사는 거대한 퍼즐이란 논리에 의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일어서는 나에게 황소개구리가 한마디 던진다.
“어이 오기로 똘똘 뭉친 사나이, 내겐 너 같은 놈이 필요해, 어때 내 밑에 있지 않겠나?”
“네 밑에? 너 같은 놈을 믿느니 차라리 예수를 믿겠다.”
예술의 바다에 풍덩 빠져버리고 싶다는 나의 눈에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고 황소개구리는 이제 하찮은 미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