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전원마을이 또 사라진다

입력 2025년05월02일 06시57분 임윤식 조회수 388

고향처럼 정감있고 아름다운 정릉골

 

도심 속 전원마을이 또 사라진다

고향처럼 정감있고 아름다운 정릉골

 

10년 전 필자는 한국사진방송(대표 김가중) 출사팀의 일원으로 정릉골을 답사한 적이 있다. 정릉골은 지리적으로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일대를 말한다. 삼각산 바로 아래 위치하여 삼각산 등산의 들머리가 되고 마을 중심에는 정릉천이 흐르는 목가적인 마을이다.


마을 주변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도시냄새가 거의 나지않는 청정지역이다. 이곳이 서울시내가 맞는가 의아할 정도로 외진 곳이다.


지금도 상당수의 집들은 난방용으로 연탄을 이용하고 있어 초겨울이 되면 어려운 가구들을 위한 연탄배달 소식이 뉴스에 나오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도 도시화의 파고는 예외없이 밀어닥치고 있다. 이른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낡은 집은 헐리고 무너지고 주민들은 하나둘 마을을 떠나고 있다.

 

며칠전 다시 가본 그곳은 이제는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폐허화되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주인이 떠난 집은 담과 지붕이 무너지고 마당엔 잡초만 무성하다.


골목마다 쓰레기가 쌓여 악취가 진동한다.


골목길 담이나 대문에는 철거대상 건물, 절대출입금지의 경고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밤이 되면 이곳은 영락없이 유령마을이 될 것 같다.

 

정릉골은 4호선 전철 길음역 3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6번을 타고 20여 분 종점인 넓은마당에서 내리면 거의 마을 중심이다. , 신설동-우이동으로 이어지는 경전철을 타고 북한산보국문역에 내려도 된다. 2번 출구로 나와 250m 정도 걸으면 경국사라는 절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정릉골 마을 입구이다.

 

경국사의 원래 이름은 청암사로 고려 후기에 창건된 유서깊은 천년고찰이다. 1546년 명종의 즉위로 문정왕후가 섭정하게 되자, 왕실의 시주로 건물을 전면 중수하고 낙성식과 함께 국태민안을 위한 호국 대법회를 열었을 때 부처님의 가호로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항상 있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경국사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1696(현종 10)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의 묘인 정릉을 복원하면서 근처에 있던 청암사도 원찰로 지정되어 경국사로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승만 전대통령이 자주 찾았고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부통령 시절 경국사를 방문, 훌륭한 절이라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암튼 경국사에서 정릉천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마치 스위스의 고즈넉한 산간마을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계곡물을 만날 수 있다. , 정릉골에는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인공 김두한이 살던 집도 있고, 박경리 소설가도 한 때 정릉골에 산 적이 있다고 한다.


정릉골 마을은 산책하기에도 정말 좋다.


미로처럼 얽혀진 골목길에서는 어렵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고,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테라스길도 만날 수 있다.


심지어는 빈 집의 낮은 지붕 위로 올라가 어린 아이들처럼 춤추고 노래하고 서로 사진모델이 되어 한 때를 즐길 수도 있다. 사진작가들이 모델을 데리고 와 기획연출작품을 찍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가 되기도 한다.

 

서울에는 아직도 개발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곳들이 몇군데 더 남아 있다. 강남구 구룡마을,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등이 그곳들이다. 정릉골과 함께 구룡마을, 백사마을은 이미 재발계획이 확정되어 이주가 많이 진전된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사진을 한답시고 낡은 판자촌과 달동네’, ‘옛모습이 남아 있는 오지(奧地)마을’, ‘버려진() ·집과 시설등을 적지않게 찾아다녔던 것 같다. 이곳 정릉골은 물론 상도동 밤골마을, 거여마천동 옛마을, 구룡마을, 백사마을, 군산의 옛모습, 부산 감천마을과 아미동 비석마을 등,


그리고 강원도 폐광들, 폐학교 및 폐교회, 폐터널, 폐기차역, 폐촌(마을), 폐항구, 폐선과 섬의 무수한 폐가들, 심지어는 산불현장의 폐허모습 등이 그것들이다.

 

난 왜 ()’자가 붙은 곳들을 그토록 집착하고 마음을 쏟아왔을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아니면 기억을 되살려내고싶은 집념 때문일까? 고단했던 삶의 흔적이거나, 그늘 속에 숨어 있는 영화로운 때의 기억이거나, 암튼...(,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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