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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를 어찌하오리까!
5월의 마지막 휴일에는, 남도 지역의 보성 다원과 통녕 다랑논을 한 번 더 다녀오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좀 편하게 출사를 다녀오고 싶었다. 하여 의기가 맞은 유일한 출사 동료, 김형과 과감히 강원도행로 방향을 잡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게 있어서도 강원도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사진에 들어서며 처음 담기 시작한 곳이 강원도였고, 그 후로도 쭉 7,8년 동안 강원도만을 다니며 사진을 배웠다. 이 기간에 그야말로 ‘자연의 재발견’을 경험하였고 나아가 우리 땅에 대한 자긍심까지 얻게 되었다. 외람된 말씀이나 좀 겁 없고 젊었던 20여 년 전, 강원도 전체의 축척 1/5000 지도를 구해 구석구석 조사하고 주말마다 현장을 찾았다. 지금 돌이켜도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물론 사진은 마음만큼 이루어내질 못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동강에 댐을 쌓는다고 하여 사회 문제로 대두하기 전의 연포.소사 마을은 참으로 적막강산이었고 시간이 멈춘 곳이었다. 언제 들려도 아늑한 느낌으로 우리의 잃어버린 고향 모습을 한 채 그렇게 우리를 맞았다. 사실 강원도의 곳곳, 아침가리.연가리.달둔리.덕풍 계곡 등등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는 지역에서 자연에 취하며 원시적 힘을 듬뿍듬뿍 받았던 기억이다.
그러나 동강이 조금씩 알려지며 방문객이 늘어나더니, 어느 해인가부터 갑자기 줄배를 이용하는 데 돈을 받기 시작하였다. 마을 청년회라고 하였다. 그 날부터 동강 탐방이 시들해졌고, 이내 곧 강원도의 힘을 외면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채로 약 10년이 흘렀다.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까? 태백에는 카지노 호텔이 생겼다던데, 추암에는 철조망이 없어졌다는데, 관음굴은 위쪽의 화전민 마을의 가축 오물로 이끼가 완전히 사라졌다는데, 가리봉과 두타산(일반적으로 박지산이라 부르는데, 동해의 무릉계곡을 낀 두타산과 같은 이름이나 이 산도 두타산이 바른 표기라고 합니다.)의 이끼가 물난리로 사라졌다는데, 설악 장수대가 쓸려가 버렸다는데......
김형 역시 외국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여 젊던 날 함께 다녀 본 강원도에 대한 향수가 몹시 컸다. 둘의 일정은 추암 일출 → 태백 이끼 → 아침식사 → 귀네미 마을 채소밭 → 대기리 고랭지 채소밭 → 황둔 지역 자작나무 관찰 → 귀경으로 골격을 잡았다.
늦은 시각에 출발하였으나, 편리해진 도로 덕에 새벽 3시경 추암에 도착하였다. 새로운 도로가 닦여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었고, 경관의 변화가 밤에도 확인되었다. 입구의 커다란 주차장과 공용 화장실은 번듯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음을 알려주었다. 궁금한 마음은 일단 접고 차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본능적으로 깨어 보니 4시 35분이었다. 날은 벌써 훤하였다. 부랴부랴 장비를 챙겨 포인트를 찾을 새도 없이 백사장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진사님들은 많지 않았으나 적지도 않았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바람 쐬러온 무리도 눈에 띄었다. 구름도 없고, 해무도 끼여 밋밋한 일출이었으나, 참으로 오랜만의 추암 작업이라 일단 셔터를 눌렀다.
짧은 일출이 끝나자 변해버린 추암을 다시 훑어보았다. 무엇보다 놀란 점은 백사장이 크게 줄어 깡총한 모습이었고, 제방은 더 두터워지고 높아져 있었다. 일견 초라하였다. 작은 포구였어도 잘생긴 모래사장을 가진 포근했던 추암은 간 데가 없었다. 물론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과거의 우리들처럼 강한 인상을 받을 수 있겠다. 그러나 지난 날의 추암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게 아닌데.....!”라는 느낌은 피할 수가 없겠다.
햇살이 강해지기 전에 이끼 작업을 시도하자며 우리들은 황급히 추암을 떳다. 그러나 우리들은 말이 줄었다. 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느껴졌다. 떨떠름한 마음으로 다음 장소에 도착해보니 이미 진사 다섯 분이 작업 중이었다. 먼저 온 분들이 작업을 마치고 빠질 무렵부터 삼각대를 펴고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내심 성에 차지 않았다.
먼저 작업하고 계시는 진사님
도로 변이었고, 규모도 작았다. 차라리 백전리 이끼나 확인할 걸 그랬나 하는 실망감이 왔다. 좀 더 치고 들어갈까 고민을 했으나, 군부대의 경고 표지와 함께 바리케이트가 앞을 막았다. 가기로 작정한다면야 이를 무시하고 계곡따라 진입도 가능하였으나 왠지 내키지 않았다. 잠을 못자 진이 빠진 이유만은 아니었다. 도대체 이끼가 돋는 지역에 서려있는 원시의 기(氣)가 느껴지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 도로변 근처의 이끼로 아쉬움만 달래고 늦은 아침을 먹기로 하였다. 김형이 미리 확보한 해장국집으로 향하였다. 김형의 추천은 역시 보증수표다. 담백하면서도 얼큰한 해장국이다. 입맛에 딱이다. 국물을 삼켜가자 속이 확 풀렸다. 배가 든든해지자 기분이 돌아섰다. “갑시다, 귀네니골로”
이미 ‘1박 2일’ 팀이 다녀갔음을 광고용 대형 사진이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자연을 알리기 위해 그들도 꽤 분발하고 있음이 확연하다, 이 고랭지 채소밭까지 왔다면야.
귀네미 마을 고랭지 채소밭
아직 배추철이 아니어서인가 푸른 색은 찾기 어려웠다. 비료 푸대가 이곳저곳 놓여있어 농사 밑작업이 시작됨을 알 수 있었다. 일단은 위로위로 올랐다. 최고점 바로 밑을 통과할 때 ‘풍력 발전기 설치를 위해 더 이상 농사지을 수 없는 지역이 되었음’을 알리는 표시판이 눈에 띄었다. 일단 정점을 향해 올랐다. 원통형의 큰 구조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용도를 알 수 없었다. 물 저장탱크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풍력 발전기가 설치된다면 태백의 매봉산과 같은 풍광이 되리라. 하여튼 햇살과 바람만은 여전해서 소위 ‘강원도의 힘’이 몸으로 전해졌다. 작업은 포기하고 배추가 웃자랐을 때 한 번 더 와보기로 했다. 또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니까!
분명 우리네 땅에 있는 천주교 기도처입니다. (예미 부근)
마음의 충족을 위해, 그리고 기자증의 위력을 실감하기 위해 예미 부근의 천주교 기도원에 잠시 들렀다. 30분의 특별 허락을 받았으나, 조용히 작업하되 사람을 찍으면 안 되고 정오종이 울리거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등을 요구하였다. 특히 장소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굳은 다짐을 받고서야 촬영을 허락하였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기자증의 위력을 실감하였다. 감사할 바!
수도하는 곳, 기도하기 위해 은거해 들어온 곳.....이 정도로만 말씀을 드리겠다. 외곽을 말씀드렸으니, 뜻만 있으면 추적이 가능하리시라 .....!
원래 계획했던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군데군데 개간된 비탈을 보았다. 수십 개가 넘어 보였다. 과연 저런 경사에서도 농사가 된다는 말인가?, 도대체 벌목을 어떻게 해냈을까? 짐작되질 않았다. 맨흙살을 드러낸 가파른 산등성이가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갈런지......
원래 계획은 황둔 지역의 자작나무 군락을 확인하기로 하였으나, 김형이 동강의 연포.소사 마을 답사를 강하게 피력하였다. 그리하여 일단 정선 광하교에서부터 예미까지 동강 일주를 작정하였다. 실은 나도 동강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하였다.
예전엔 초입부터 상태 험한 시멘트 길이 곧 비포장 길로 바뀌어 흙먼지 폴폴 날리는 오지답사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고성 분교를 지나면 그 스산한 터널도 반드시 통과해야 하였다. 작은 트럭 딱 한 대만 지날 수 있는, 잘못 진입하면 바로 천정과 벽을 박을 수 있어 일단 후진해서 각도를 제대로 잡고 재진입해야 하는, 진입해선 라이트를 켜고 맞은편에서 차가 진입하지 말도록 신경을 바짝 써야 하는, 바닥엔 습기로 늘 물이 촉촉하던, 출구로 다가갈수록 하늘로 뻥 솟아올라갈 것 같이 파란 하늘만 보이던, 그 독특한 터널도 또 궁금했다.
동강을 따라 진행하면서 예전과는 달리 군데군데 동강임을 알리고 각종 체험 활동을 광고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비좁아 교행이 어려웠던 길은 편도 1차선으로 말끔히 정비되어 있었다. 덜커덩을 예상했으나 융단 깔고 달리는 꼴이었다. 경기도 여느 지역이라고 해도 별반 이상할 게 없었다. 마을 이름을 밝히는 안내판도 요소요소에 세워져 있었다. 지루한 길을 지나 고성 분교를 통과하였다. 곧 소사 마을로 넘어가는 언덕이 나타났다.
처음으로 동강에 왔던 날, 비탈밭 사이에 소나무와 함께 약간의 공간이 있어 차를 세워두었던 장소가 확 눈에 들었다. 그 때는 그 곳에 차를 세워두고 소사 마을로 넘어가는 재를 타박타박 걸어서 탔다. 돌아오던 길이 꽤나 힘에 부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카메라 가방과 삼각대는 늘처럼 왜그리 무겁던지.....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정말 그 때는 열정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기였다.
차로 쉬이 넘어가니 소사 마을이다. 토벽을 바른 담배 건조실을 가졌던 집이 그대로여서 반가웠으나 살림집이 아닌 교회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곤 옛 모습이 별반 눈에 띄지 않았다. 죽 통과하여 연포 마을로 들기 위해 강가로 내려섰다. ‘어라?’ 연포로 들어가는 줄배는 간 곳이 없고 시멘트 다리가 놓여 있어 무사 통과로 연포에 진입하였다.
동강을 제법 다녔던 어느 해 2월달에는 동료들과 함께 지금의 갤로퍼로 동강 도하를 감행했었다. 물 속의 돌에 바퀴가 퉁퉁 튕기며 차체가 물살따라 흘러갈 때 느꼈던 짜릿한 긴장감이 다시 새록새록했다. 물론 당시에는 섭다리도 놓였다. 래프팅 사업이 자리잡고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이곳에도 변화의 물살이 빠르게 들이쳤나 보다. 영화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가 되었던 소담하고 이뻤던 분교 건물은 외관 크게 바뀌어 알아보기 힘들었고 체험 학습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놀라움은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관리가 소홀했는지 조그만 운동장은 잡초가 무성한 채 볼품없는 공지가 되어 있었다. 그 초라한 운동장 한켠으로 들마루가 놓여 있었고 거기에 노파 한 사람이 한낮의 햇살을 피하고 있었다. 옆에는 좀 젊은 여인네 하나가 서 있었다. 체험장을 좀 둘러봐도 되겠는가를 물어보고자 다가섰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확인한 그 여인은 우리네 여인의 얼굴과 피부가 아니었다. 필리핀 혹은 동남아시아에서 시집온 여인네임이 분명하였다. 순간 애잔한 슬픔이 밀려왔다. 고향 땅 보다야 나은 게 있어 한국행을 결심했겠지만, 어찌 그래 이런 첩첩 산중의 오지 마을로.....? 인생 조금 길게 보면 누가 누굴 측은 시 하겠는가마는, 오지 생활이 어쨌겠냐마는,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에 대한 애릿한 슬픈 감정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 때까지 점심을 먹지 못해 피곤과 배고픔으로 지쳐있던 우리 둘은 허탈감을 곱으로 느꼈다. ‘미안스럽게 괜히 들리자고 했네.....!’ 김형의 독백과 함께 우리는 바로 차를 돌려 연포 마을을 빠져 나왔다.
홧김에 서방질이라고, 뭔가 대타가 필요하였다. 결국 고성산성에 올라 동강을 한 번 곁눈질하기로 하였다. 작열하는 햇살을 받으며 산성에 올랐다. 얕은 잡초와 이름 모를 꽃들, 왕벌들도 웽웽 날아다녔다. 누군가 자연에서 누드를 찍는다면 정말 좋은 장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벽의 잔재를 보니 말초 인생들의 피곤한 삶이 몸으로 전해졌다. 아득한 삼국 시대에 이곳까지 동원되어 힘겹게 돌을 지고 쌓고 ...... 원형으로 둘렀을 성벽은 4곳 정도에만 일부 흔적이 남아 있었고, 복원 상태도 부실하여 하다만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성터의 그늘에서 허기진 배를 담배로 달래며 불어오는 바람에 한껏 강원도를 호흡하였다.
촬영을 마감하려하였으나, 사광을 받는 나무와 갓 심어진 싹이 연두빛을 품어내는 밭을 지나게 되어 잠시 작업을 하였다. 그 후 일사천리로 귀경하였다. 덕평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하였다. 밤 8시 30분 경이었다.
이번 출사를 통해 느낀 점을 잠깐 말씀드리고자 한다.
지자체가 관리하며 강원도는 급하게 분칠을 하기 시작하였다. 왜 그리 성급하게, 빠르게 꾸며야만 했는지 .....? 물론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한 마디로 강원도의 개성이 살아있지 못하다. 충청도나 전라도 어디에서도 익숙한 그런 관광 시설이 졸속으로 자리 잡았다. 동강을 저 정도로밖에 관리하지 못하는지, 그게 우리네 현실인지, 그 정도 수준인지 ..... 좀 더 연구하고 좀 더 의견을 모아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강원도로 거듭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게다가 거의 난개발 같은 개간 사업으로 자연의 경관이 크게 손상 받고 있다. 광산 개발로 절개되어 돌과 흙의 속살만 드러낸 불구의 산도 여기저기 보이는데, 다시금 급경사 지역까지 벌목하여 개간하는 모습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지민들의 생계를 위한 개발과 자연 보전의 문제는 늘 치열하게 대립하고 의견이 분분한 주제임을 잘 안다. 그래서 더욱 장기적 관점으로 신중하게 서서히 진행되었으면 한다.
분칠한 강원도를 보느니 차라리 당분간은 강원도에 갈 것 같지 않다. 아마 시간이 지나며 또다시 궁금증이 도지면 이번처럼 불현듯 마음을 일으킬런지는 모르겠다.
보태는 말씀 : 산만하고 긴 글 인내하고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그만 정보를 드립니다. 태백에 가시거든, [24시 해장국집]은 꼭 들려보시기 바랍니다. 중앙 시장 조금 지나 좌회전 하시면 우측으로 바로 보입니다. 그리고 영동고속도로의 [덕평 휴게소]도 들려 보시기 바랍니다. 친환경적으로, 사람 중심으로 한 단계 성숙한 휴게소로 꾸몄다고 느꼈습니다. 건물 내는 마치 공항 면세점에 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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